전문투자자 김모씨(38)는 요즘 하루종일 주가지수 선물차트에 매달려 있다. 지난달 주식투자에서 발생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다. '주가가 떨어져도 이익을 낼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선물매매를 시작한지 보름여가 흘렀지만 수익은 커녕 투자원금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개인의 투기적 선물거래가 전체 증시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지만 이들의 슬픈 사연은 끊이지 않는다. 최근 며칠 동안 손실규모가 20억~30억원에 달해 회복불능에 빠진 큰손들도 적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권욱 코스모투자자문 사장은 "선물투자 초보자들의 경우 80∼90%는 6개월 또는 1년 만에 빈털터리가 된다"고 전했다. 최 사장은 "개인들이 선물거래의 투기성에 현혹된 측면도 있지만 현물시장의 잦은 변동성에 싫증과 실망을 느낀 탓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증시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관투자가들의 매수기반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고수익환상에 빠진 개인들의 무모한 '올인'식 베팅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선물 거래대금이 현물의 9배 현물시장이 대내외 악재의 영향으로 조정국면을 지속하자 선물거래가 폭발하고 있다. 지난 4월 하루 평균 11조1천억원이었던 선물거래대금이 5월 들어 15조5천억원으로 급증했다. 40% 정도 늘어난 수치다. 지난 5월10일의 하루 선물 거래대금은 20조6천억원에 달했다. 통상 강세장의 경우 현물 거래대금에 대한 선물 거래대금의 비율(현선배율)이 2∼3배 수준이지만 최근에는 9배까지 확대됐다. 이처럼 선물거래가 급증하는 것은 무엇보다 현물시장을 이탈한 개인투자자들이 선물시장으로 대거 몰리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종합주가지수가 고점(938)을 기록한 지난 4월23일 이후 현물주식을 사기 위해 대기중인 고객예탁금은 1조6천8백억원 급감했지만, 선물투자를 위한 증거금인 선물예수금이 1천5백억원 증가한게 이를 말해준다. 또 장중 변동성 확대로 개인들의 초단기 트레이딩도 거래대금 증가의 또 다른 원인이다. ◆ 무기력한 기관이 투기장 부추겨 고유가, 미국의 금리인상, 중국긴축 등 3대 악재의 영향력이 다소 약화되고 있지만 증시 변동성이 오히려 확대되는 것은 선물시세가 요동을 친 결과다. 선물가격의 오르내림에 따라 선물과 연계된 프로그램매매가 확대돼 현물시장이 출렁인다는 것이다. 지난달 중순까지는 몇몇 투기적 외국계 펀드가 선물시장을 주도했으나 최근에는 그 바통을 선물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 큰손들이 이어받고 있는 양상이다. 이처럼 선물시세가 투기성향의 소수 집단에 좌우되고 있는 것은 국내 기관의 선물시장 참여비중이 극히 저조하기 때문이다. 국내 기관의 선물시장 비중은 24%로 개인의 절반 수준이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내 기관의 주식비중이 줄어들자 자연히 선물헤지 수요도 감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상종 피데스투자자문 사장은 "기관들의 주식비중이 증가하면 선물시장 수요도 자연히 늘게 된다"면서 "기관투자가 육성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