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40달러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사상 최고치(WTI 종가 기준)로 급등한 국제유가 오름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유가가 지구촌 경제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우려 역시 높아지고 있다. 유가 급등이 인플레 압력 고조->금리 조기 인상->소비 위축->생산 둔화 등으로 이어지면서 회복 강도가 크게 약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3차 오일쇼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는 상황이다. ◆ 유가 급등 핵심 원인은 수요 증가 뉴욕상품거래소에서 12일 배럴당 40.77달러로 마감, 종가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로 치솟은 서부텍사스중질유(WTI) 선물가격은 올들어서만 20% 급등했다. 지난 1년간 상승률은 50%에 달한다. 유가 급등은 △테러 불안 △투기 매수 △미국 내 재고 부족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하지만 궁극적 원인은 수급 불안이다. 세계 경제 회복세 등으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잇따른 감산 등으로 공급이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날 경제성장과 중국의 원유 수요 급증으로 올해 전세계 석유 수요가 1988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올해 하루 석유 수요량은 지난해보다 1백95만배럴 늘어난 8천60만배럴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지난달 전망치보다 27만배럴 늘어난 수치다. 지난 20년 동안 첨단 업종에 투자가 집중되면서 정유 등 원자재 관련 시설이 노후화한 것도 유가 급등의 요인이다. 골드만삭스의 제프리 커리 전무는 원자재 가격 강세를 '구(舊)경제의 복수'로 규정했다. ◆ 50달러까지 급등 가능성 전문가들마다 수치는 엇갈리지만 현재로선 국제유가 40달러 시대가 상당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투자은행인 바클레이즈캐피털은 중국의 수요가 급증하는 반면 미국 내 재고가 부족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올 여름 유가가 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알라론트레이딩 애널리스트인 필 필린은 "이제 40달러가 새로운 유가 기준이 됐다"며 "본격적인 고유가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유가가 45달러까지 오르면 중국의 원유 수요가 감소세로 돌아서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유가는 단기적으로 OPEC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푸르노모 유스기안토로 OPEC 의장은 다음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임시회의에서 회원국들이 증산에 합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 세계경제 회복세 '찬물' 고유가는 세계경제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유가 급등이 물가 상승→금리 인상→소비 위축 등으로 이어지면서 지구촌 경제 회복세에 급제동을 걸 것으로 우려된다. 기업들이 유가 상승에 따른 비용 증가로 감원 카드를 빼들 경우 회복 조짐이 뚜렷한 고용시장에 찬바람이 불 수도 있다. 고유가에 따른 물가 상승은 이미 선진국들의 금리 인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최근 유가 급등이 '오일쇼크'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의 경제 여건이 1차 오일쇼크(1973∼1974년), 2차 오일쇼크(1979∼1980년) 때보다 양호한 데다 유가 상승 폭도 당시보다는 훨씬 작아 고유가에 따른 세계경제 충격이 '쇼크'보다는 '타격'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이코노미스트 줄리엔 시다람두는 "물가 상승을 감안할 경우 브렌트유 가격이 1979년 수준에 도달하려면 현재의 2배 이상인 80달러까지 상승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