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의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이 거꾸로 위험을 조장할 때가 있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와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 바로 그것이다. 보험에 든 것을 믿고 교통법규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게 도덕적 해이라면, 위험발생 가능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보험에 가입하려 하는 것이 역선택이다. 역선택이 조금 더 발전하면 보험사기가 된다. 실제로 지난 97년 무려 39개의 보험에 든 사람이 중앙선 침범사고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보험사들은 자신의 월수입보다 많은 월 4백만원의 보험료를 내온 점을 들어 위장사고라며 46억원에 이르는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마찬가지로 요즘 정치판은 국민과 위태로운 경제에 대해 역선택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뜬구름 잡는 이념ㆍ색깔ㆍ당파 논쟁 와중에 정작 민생토론은 눈을 씻고 봐도 없으니 말이다. 총선 후 각 당은 한결같이 민생을 외치지만 그 덕에 살림살이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한가한 이념논쟁에 몰두해 있는 동안 세상은 정말 휙휙 돌아간다. 유럽연합(EU)은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들의 추가 가세에 따라 25개국 거대 연합체로 재탄생했고, '차이나 이펙트(중국효과)'는 '차이나 임팩트(중국충격)'로 돌변했다. 권력 판도에 정신이 팔린 정치인들에게 이런 변화가 보이기나 할까. 벌써 5월인데 여전히 수출 말고는 기댈 곳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한 주 동안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에서 1조8천억원어치의 주식을 내다팔면서 종합주가지수가 74포인트나 폭락했다. 정부는 '시장의 과민반응'이라고 축소 해석했지만 중국쇼크의 후폭풍이 이 정도로 가라앉을지 걱정이다. 3월 중 산업활동 지표(소비ㆍ투자) 부진에 이어 서비스업 활동 지표(7일)마저 악화된다면 내수회복 기대는 좀 더 접어둬야 할 것 같다. 게다가 국제유가는 14년래 최고인데 4월 소비자물가(3일)는 얼마나 올랐을까? 해외 투자자들에게 '성장 위주'를 약속했던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개혁 없는 성장은 열 걸음도 못간다"는 여당ㆍ청와대와의 시각 조율이 숙제다. 총선 전 경기 낙관론자로 돌변했던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6일)에서 현재 경기상황을 어떻게 진단할지도 궁금하다. 전경련과 민주노동당의 비공개 회동(4일)도 눈길을 끈다. 노동계가 '6월 투쟁'을 선언한 터여서 양측의 대화채널 구축은 의미가 있다. 7일엔 농림부가 쌀시장 개방 재협상 일정을 발표하고 LG투자증권 인수제안서 공모가 마감된다. 계절의 여왕 5월의 신록은 화사함을 더하는데 경제는 다시 어두운 터널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살기 팍팍해도 가족을 생각하는 한 주였으면 한다. < 경제부 차장 oh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