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부총리'인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의 취임으로 정부가 대주주인 은행을 비롯해 주요 국책.시중은행 경영진 인사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15일 금융계에 따르면 이 부총리는 금융에 관한 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데다 인적 자원도 두루 꿰고 있어 금융계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과거 금융감독위원장 당시에도 이 부총리는 '은행 경영을 제대로 공부한 젊고신선한 피를 수혈해야 한다'며 금융권 최고경영자의 세대 교체 바람을 주도했다. 이 부총리는 특히 부총리 수락 과정에서 금융계 인사에 관한 재량권을 어느 정도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져 국책은행이나 공적 자금이 투입된 은행장,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금융.증권 유관기관장 인사에서부터 변화가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현 은행 지배구조는 이헌재 작품 지금의 국내 시중은행 지배구조와 경영진은 대부분 이 부총리가 금융감독위원장시절에 '판'을 짠 것이다. 이 부총리는 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을 주도해 지금의 국민은행을 탄생시키고 김정태씨를 행장으로 선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내 첫 금융지주회사를 도입해 우리금융지주를 출범시키고 윤병철 회장과 이덕훈 우리은행장에게 자리를 준 것도 그였다. 지난 1998년에 시작된 금융 구조조정으로 공적 자금을 받은 은행장 중 이 부총리의 뜻에 맞지 않게 은행장이 된 사람은 위성복 전 조흥은행장이 유일하다. 당시 금감위원장이었던 이 부총리는 위 전 행장이 경영 부실에 책임이 져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위 전 행장은 호남이 나은 금융 실력자라는 배경으로 청와대를비롯한 정치권의 지원에 힘입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행장의 전횡과 경영 외압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은행장 선임과 경영의 투명성,견제 기능이 작동해야 한다며 시중은행에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한 것이나 현직 행장의 손아귀에 들어 있어 들러리 역할 밖에 못하던 은행장추천위원회를 실질적으로 독립시킨 것도 모두 이 부총리의 작품이었다. ◆카드 부실 금융기관 책임론 현재의 카드 문제와 신용불량자, 가계 부채 과다 등은 정책과 감독에도 문제가있으나 근본적으로 돈이 좀 된다 싶으면 떼몰이를 하는 은행과 카드사들의 분별 없는 경영 행태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게 이 부총리의 시각이다. 이 부총리는 취임사에서 "사적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시장 참가자들의 이기적 행동은 쏠림 현상을 심화시키고 시장의 불안정성을 확산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시장이 깨지든 말든 내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억지나 불장난을 용납하지않겠다"고 경고했다. 경쟁적 담보대출과 카드론으로 부동산 투기와 신용불량자 양산을 부추긴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와 LG카드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이기적 행태는 시장을지키고 안정시켜야 할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는 시각이다. 따라서 국책은행이나 공적 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은 직접적인 방식으로, 정부의 직접 통제가 미치지 않는 금융기관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대대적인 경영진 물갈이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은행장 인사가 시금석 김종창 전 행장이 금통위원으로 자리를 옮겨 공석이 된 기업은행장 선임이 이헌재 식(式) 인사 태풍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지난 13일에 마감한 기업은행장 공모에는 전.현직 금융기관장과 경제계 인사 등17명이 지원서를 냈다. 다음달 임기가 만료되는 우리금융 회장과 부회장 2명, 우리은행장, 광주은행장,경남은행장의 인사도 관심거리다. 정부는 우리금융의 현재 지배구조는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판단이어서 지주사 회장과 우리은행장으로 이원화된 지배구조의 변화는 물론 큰 폭의 경영진 물갈이가 예상된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우리금융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많아 다음달 정기주총 전까지 현 시스템의 개선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행장 선임과 우리금융 계열사 경영진 인사는 다른 금융기관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기업은행장에는 정기홍 전 금감원 부원장과 박철 전 한국은행 부총재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우리금융 회장에는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 윤증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우리은행장은 이덕훈 행장의 연임과 함께 전광우 우리금융 부회장, 하영구 한미은행장, 강정원 전 서울은행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시중은행장의 경우 국내외적으로 검증된 금융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는게 이 부총리의 평소 소신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잔뜩 긴장한 금융계 이 부총리 취임 이후 금융계가 잔뜩 긴장하는 이유는 정기 주총 시즌이 임박해있기 때문이다. 공적 자금이 투입된 모 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이 부총리는 국내 금융 상황을너무 잘 알고 있고 경영진 개개인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많은 정보가 축적돼 있어 그의 언행에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국책은행이나 공적 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에대한 최종 결정권은 청와대가 행사하고 있으나 이 부총리의 의사가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이며 다른 시중은행 경영진 인사에서도 간접적이지만 큰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 부총리는 시장지향적이고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리스트'인 만큼 금융기관장 인사에도 직접적 개입 대신 절차적 합리성과 투명성을요구할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피를 흘리지 않고 칼을 쓸 줄아는 검객'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서울=연합뉴스)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