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상세히 밝힌 장문의 석명서(釋明書)를 3일 발표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이날 '진실을 밝힙니다-정상영 명예회장의 석명서'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현대그룹의 경영권은 정씨 일가의 것이며 현대에 대한 경영권을 김문희씨가 행사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 명예회장은 특히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매입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고 정몽헌 회장이 타계 3주전 찾아와 경영권 보호를 위해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7.5%를 매입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처음으로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또 현대엘리베이터 뿐 아니라 현대상선의 지분을 매입한 것 역시 현대 고위층의 경영권 방어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정 명예회장의 이같은 적극적인 배경설명이 지난 2일 법원의 금강종합건설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 인용 등으로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반전시키고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고 정몽헌 회장이 생전에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매입을 요청했었다는 사실 등을 공개함으로써 지분 매입에 따른 세간의 도덕적 비난여론을 무마시키면서 스스로 도덕적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현대엘리베이터의 대주주인 김문희씨와 김씨의 남편인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의 부도덕성을 적극 부각시킴으로써 자신에 대한 현대측의 도덕성 시비를 희석시키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보도자료에서 "김문희씨측은 현대엘리베이터를 대주주의 전횡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국민기업화하겠다고 했지만 남북경협이라는 사업의 성격상 현대아산의 경우라면 모를까 현대엘리베이터의 국민기업화는 경제논리보다는 감정을 앞세워 국민들을 '명분의 제물'로 삼는 비도덕적 행위의 전형"이라고 비난했다. 또 "현영원씨는 대주주의 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현대상선의 부실이 심화되는 2000년부터 현재까지 현대상선 회장직을 유지하면서 고액의 연봉을 타가고 있다"면서 "내 조카인 정몽헌은 비자금과 부실로 곪아가는 현대상선의 일로 인해 책임을 지고 죽었는데, 바로 그 회사의 회장인 장인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 부실경영에 책임도 지지 않고 아직까지도 직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 명예회장은 특히 "현대그룹이 본인의 장형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에 의해 씨가 뿌려지고 성장한 기업으로, 만약 정 명예회장이 살아계셨다면 이같은 상황에서 본인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하셨으리라 믿는다"고 언급, 자신이 정 명예회장의 정신을 이어받은 적통(嫡統)임을 내세웠다. 그는 이와 관련, "김씨가 대주주로서 전횡을 일삼고 정몽헌 회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죽은 뒤에도 책임지는 부하가 없는 상황에서 현대의 정신을 온전히 지키고 현대그룹이 더이상 국민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계속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 본인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고 부연했다. KCC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은 최근 일련의 사태전개가 '외숙이 조카며느리의 경영권을 빼앗으려 한다'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데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면서 "이날 발표도 이같은 오해를 바로잡고 현대그룹을 제대로 이끌기 위해서는 정씨 일가가 경영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passion@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