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정부와 의회, 금융기관들이 1994년 말 페소화 가치 폭락에 따른 `데킬라 파동'으로 파생한 은행 부실채권 정리를 둘러싸고 뒤늦게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는 1995년 파산위기에 몰린 금융기관들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가 일종의 공적자금 투입 형식으로 은행권 부실채권을 일괄 매수해 제로쿠폰채(債)를 발행한 것과 관련된 것으로, 이 채권 액수는 현재 이자까지 포함해 200억달러에 달한다. 원내 제1당인 제도혁명당(PRI)을 비롯해 민주혁명당(PRD) 등 야당과 부실채권정리기구인 예금보험공사(IPAB)는 당시 은행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초래한 막대한 금액의 부실채권도 정부에 떠넘김으로써 국민의 조세 부담만 가중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공적자금 투입 4개 은행에 대해 회계감사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의회 감시위원회를 위해 일하고 있는 연방최고회계감사원(FAS)은 최근 기자회견을 갖고 공적자금 성격의 예금보호은행기금(Fobaproa)으로 금융기관이 부당하게 떠넘긴 부실채권 규모가 104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결과 드러났다며 철저한 책임 규명에 나설 것임을 결의했다. 이 가운데 4개 은행과 관련해 부당하게 매입된부실채권 규모는 64억달러였다. 그러나 당시 파산위기에 몰린 18개 은행 가운데 정부의 부실채권 매수로 살아남은 국내 최대 은행인 바나멕스(Banamex)를 비롯해 방코메르(Bancomer), 반오르테(Banorte), 비탈(Bital) 등 4개 은행은 1995년 부실채권 매각과 관련해 이미 여러 차례회계감사를 받은 만큼 더 이상의 의회 및 정부기구 감사는 필요없으며, 채권도 반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비센테 폭스 정부는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에 채권의 반환과 회계감사를 요구하는 야당과 IPAB의 요구에 대해 지난 4월 이를 거부하도록 하는 포고령을 발령했다. 의회는 이 행정명령에 맞서 소를 제기해 같은달 승소했으나 폭스 행정부의 법률팀은 다시 항소했다. 이어 지난주 행정법원은 이들 4개 은행은 의회의 회계감사에 응할 필요가 없고 동시에 모든 소송이 해결될 때까지는 채권을 반환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데킬라 파동'으로 인한 은행부실채권 처리 문제는 다음달 새 하원이 개원하면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야당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논란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부터 하원은 물론이고 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원에서도 관련은행들이 부실채권 매각과 관련한 서류 일체를 의회에 넘기지 않을 경우 부실채권정리를 위한 공적 자금 조성을 위해 내년도 예산을 할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금융기관에 제공된 제로쿠폰채는 아직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다. 앞서 미국의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멕시코의 금융권구제 비용이 이자까지 포함해 1천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부실채권 매수를 위해 발행된 채권의 지급만기일은 1차분 170억달러가 오는 2005년 만기가 도래하며, 이어 나머지 74억달러는 2006년 지급만기일이 된다. 멕시코 시민단체는 공적자금 투입 은행 고위관계자들이 자신의 부유한 친구들이나 은행주주, 정계실력자 등에 부당한 방법으로 대출을 유발시키고 정부에 지불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99년 의회가 캐나다 회계법인을 고용해 공적자금 투입 은행에 대한 부실채권 정리 상황을 조사했을 때도 부당한 거래가 이뤄졌다는 의혹이 가는 부실채권 금액이 7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김영섭 특파원 kimy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