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석유메이저(국제석유자본)의 이익을 위한 '명분없는 전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실제로 석유메이저들은 1991년 걸프전 이후 중동에 편중된 석유 공급원을 다변화하기 위해 서아프리카,카스피해,남미 등의 유전개발에 주력해 온 게 사실이다. 특히 메이저와 인접국간의 이해가 엇갈리는 서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카스피해 지역에선 이미 분쟁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강대국의 각축장,카스피해 유전=동서냉전이 끝난 뒤 서방 메이저들이 경쟁적으로 진출한 카스피해 유전지대에서는 이미 긴장감이 높아져 있다. 지난 2월 중순 런던에서 열린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의 결산 기자회견장에서는 카스피해 유전개발을 놓고 소동이 벌어졌다. 인권단체들이 BP가 추진 중인 아제르바이잔과 터키를 연결하는 송유관 건설공사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터키는 원유 수입을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이라크북부 키르쿠크 유전에 의존,카스피해 송유관 건설에 적극적이다. 아제르바이잔과 이란은 카스피해의 유전지대를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영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루지야공화국과 체첸 무장세력간 분쟁도 유전지대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2001년 감행됐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도 명분은 '9·11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을 지원한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이었지만 배후에는 중앙아시아 석유자원의 공급 루트를 확보하려는 전략이 다분히 깔려 있었다. 중앙아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서방으로 공급하려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거쳐 아라비아해로 수송하는게 가장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서아프리카에 번지는 석유분쟁=4월 들어 연합군의 바그다드 대공세가 시작되면서 이라크전쟁이 확전되고 있지만 메이저들의 진짜 관심은 서아프리카 유전지대에 쏠려있다는 분석도 있다. 아프리카 최대 유전지역인 나이지리아 니제르강 유전지대에선 이조족(8백만명) 일부 무장세력이 유전시설을 장악 중이다. 현재 이들은 하루 평균 2백만배럴을 생산하는 나이지리아 유전의 40%를 점령,폭파위협을 하면서 정부와 대치 중이다. 정부측은 이들에게 정치 참여를 제의하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 메이저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분쟁지역은 나이지리아 뿐만이 아니다. 걸프전 이후 엑슨모빌 BP 셰브론 토털피나엘프 등은 최근 5년 간 적도기니 가봉 앙골라 등에 20조원을 투자했다. 적도기니와 가봉은 심해 유전지대를 놓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고 앙골라는 내전이 이어져 메이저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