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가전기기전시회(CES 2003)가 열리고 있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와 인접한 힐튼호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은 지난 주말 이곳 28층의 한 스위트룸에서 한국경제신문, 일본 아사히, 독일 슈피겔 등 3개 언론의 실리콘밸리 특파원과 '디지털 시대'를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감청색 스웨터 차림으로 대담장을 들어선 그는 CES 기조강연에서 소개한 손목시계를 화두로 꺼냈다. 지능형 개인용 개체기술(SPOT:Smart Personal Objects Technology)을 채용, 항상 인터넷에 연결돼 있어 일정을 알려주고 뉴스나 기상정보, 교통상황을 전해 주는 시계였다. 게이츠 회장은 이 시계가 '지능형 생활(Smart Living)'을 실현해 주는 주요제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10년간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완전히 디지털 형태로 바뀔 것"이라며 향후 10년을 '디지털 시대(Digital Decade)'라고 정의했다. [ 대담 = 정건수 < 실리콘밸리 특파원 > ] ----------------------------------------------------------------- -사람들이 점차 많은 일을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어 '지능형 생활'에 한발 다가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기기가 보다 사용하기 쉬워져야 한다고 봅니다. "하이테크 업계가 사용하기 쉬운 제품들을 많이 내놓고 있습니다. MS도 제품을 보다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가령 VTR로 녹화를 하는 것처럼 TV화면에 메뉴를 보여주고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SPOT 시계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몇 개의 버튼으로 뉴스 날씨 등의 정보를 받아볼 수 있고 메시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SPOT 시계를 사용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컴퓨터가 휴대폰이나 시계에 내장돼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지능형 생활을 가능케 하는 기본적인 힘은 무엇입니까. "장비 네트워크 서비스 등 세 가지 분야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이들이 서로의 발전을 촉진한 결과입니다. 서로 다른 장비들이 연계돼 작동되도록 함으로써 이런 일들을 간단히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첨단기기가 등장하면 기존 제품과 경쟁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PC 휴대폰 TV 등은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계돼 작동하는 형태로 고유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능형 생활이 이뤄지려면 초고속 인터넷이 필수적입니다만 미국은 아직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장애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이 20%에 접근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한국이 이미 50%를 넘은 사실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미국도 앞으로 2~3년 동안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다른 나라가 잘하고 있는 것을 지켜봤으며, 앞으로 수요가 늘면서 장비가격도 떨어질 것입니다." -무선통신망으로는 와이파이(Wi-Fi.무선구역내 통신망)가 급부상해 3세대 이동전화(3G)를 제치고 가장 핵심적인 망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됩니다만. "와이파이와 3G는 상호보완적입니다. 사람이 오래 머무는 집 회사 호텔 공항 전시장 같은 곳에서는 와이파이가 많이 쓰일 것입니다. 와이파이는 (이동중인) 자동차에서는 쓸 수 없는 약점이 있어 기본적인 통신망은 3G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와이파이는 분명 정보전송 속도나 가격면에서 매우 매력적인 기술입니다. MS도 와이파이를 지능형 생활의 핵심 요소로 채택했습니다. 음악을 집안의 어느 곳에서나 듣고 냉장고의 작은 화면에 PC 정보를 표시한다는 아이디어를 실현하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이지요." -SW 회사로 출발한 MS가 최근 하드웨어에도 잇따라 진출하면서 MS가 장비 제조업체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고 있습니다. "MS는 SW 회사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SW의 마술(magic)에 관한 것입니다. 하드웨어는 예외적으로 마우스와 키보드 같은 PC 주변기기와 X박스(가정용 비디오게임기) 등 몇가지만을 만들고 있습니다. X박스도 사실 (직접 생산하지 않고) 몇몇 업체와 계약해 위탁생산하고 있지요. 우리가 X박스 사업을 하는 것도 SW 개발을 위한 것입니다. 게임 개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다른 사람이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이지요. 제조업체가 게임기를 만들고 우리는 SW만 할 생각입니다." -집을 첨단 'e홈'으로 꾸몄다고 들었는데 현재 어떤 장비를 사용하고 있습니까. "태블릿PC를 사용해 메모를 하고 SPOT 시계도 이용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미디어센터 버전0(개발단계의 제품)입니다. 이것을 활용해 집안 어디에서나 음악을 듣고 영화를 봅니다. 세 달 된 막내 아이가 잠자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지능형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기기를 제공하기 위해 MS는 여러 제조업체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와의 협력이 무척 활발한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지금까지 삼성전자와 PC쪽에서만 협력해왔으나 최근 들어 휴대폰 PDA(개인휴대단말기)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삼성은 핵심기술에 대해 뛰어난 피드백을 신속하게 제공하고 있으며, 우리와 협력하기에 적합한 엔지니어링 문화도 갖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삼성은 소비자 전자 제품 분야에서 MS의 핵심적인 파트너로 부상했지요." -MS 본사가 있는 시애틀 부근에 삼성전자와 공동연구소를 만든다는 얘기가 있습니다만.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MS는 공동연구를 위해 연구개발 인력을 파트너회사에 보내는 등 여러가지 활동을 합니다. 삼성과도 그런 일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국의 초고속인터넷산업을 평가해 주십시오. "한마디로 매우 놀라운(amazing) 일입니다. 한국은 분명 전세계 초고속인터넷 분야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초고속인터넷 보급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게임이나 온라인비디오 서비스 등은 궁극적으로 세계적 모델이 될 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과 업계가 한국의 성공사례를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 90년대 말의 외환 위기를 극복하고 정보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한국 경제의 앞날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한국이 몇 년 전 겪은 어려운 시기는 어떻게 보면 참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한국 사회와 정부가 변화를 추진키로 결정했고, 그 성과를 거뒀지요. 특히 대기업을 여러 개의 독립적인 기업으로 나눠 특정 분야에 집중할 수 있게 한 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 덕에 삼성 LG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탄생한 것이지요. 특히 삼성은 반도체 산업에서 게임의 룰을 바꿔놨습니다. 한국은 정말 역동적인(exciting) 나라입니다. 교육열이 높고 경제 발전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한국인들은 최근 새로 선택한 정부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정치적 긴장이 발전을 지연시키거나 지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희망합니다."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은행의 신용상태가 개선되고 자본의 분배가 효율적으로 이뤄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것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지요.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이나 기업에 자본이 투자돼서는 안된다는게 경제의 기본 원칙입니다. 긍정적인 현상은 일본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지요. 일본경제의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봅니다." < kschung@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