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23일 정부조직 개편문제와 관련,"현재의 조직을 최대한 가동하겠다"고 현행 유지 방침을 밝혔다. 정부 조직이 중복되거나 서로 상충되는 경우에도 "두세번 검토해 필요하면 조정할 것"이라는 신중한 입장이다. 새정부 출범과 동시에 정부조직의 비효율성을 질타하며 메스부터 들이대던 과거 정부와는 분명 차별화된 입장이다. 그러나 국가정보원 등 일부 부처의 기능재편은 노 당선자의 공약사항인 데다 "비대화된 관료조직을 다이어트해야 한다"는 여론도 비등하고 있는 만큼 일련의 수술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공약=노 당선자는 공약대로 정권인수위와는 별도로 민·관합동의 '정부조직 진단위원회'(가칭)를 설치할 것으로 보인다. 진단결과 정부조직간 기능이 유사하거나 중복된다고 판단될 경우 기능 재조정 또는 부처간 통폐합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재정경제,예산,금융감독,소방,산업자원,청소년,복지분야의 조직과 운영체제를 개선하고 △각종 위원회,산하단체 등의 조직과 기능을 정비하며 △감사원의 정책감사 기능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는 차기정부 출범과 동시에 설치·가동될 전망이다. 대통령 친인척 및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노 당선자의 의지가 강하게 실린 공약이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에 대한 수술도 불가피해졌다. 노 당선자는 국정원 도청의혹 폭로 공방이 한창일 때 "국정원의 국내사찰 업무를 중지시키고,해외 정보만 수집·분석해 국익을 위해 일하는 해외정보처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청와대 비서실 조직과 관련,노 당선자는 대통령제의 특성을 감안할 때 "무조건 감량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대신 대통령의 국정운영 보좌와 주요 현안에 대한 조정기능 위주로 재편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전문가들의 제언='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를 요구하고 있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정부덩치를 지금의 3분의2 수준으로까지 줄일 것을 건의했다. 구체적으로는 재정경제부의 경우 기획예산처의 예산편성 기능을 이양받아 행정부처의 예산집행을 조정하는 등 수석 경제부처에 걸맞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 또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중소기업청 등 산업 관련 부처를 산업기술부로 일원화하고,보건복지부 노동부 여성부를 사회복지부로 통합하는 등 현행 2원18부를 3원13부로 대폭 축소할 것을 주장했다. 한경연은 노사정위원회를 폐지해 해당 업무를 유관 행정부처에 넘길 것을 촉구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선빈 수석연구원은 "정부 조직 개편은 부처별 기능 중심의 기능분립적 기조에서 견제와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예컨대 기획예산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바꿔 거시 예산기획 기능을 맡도록 하고,예산집행 기능은 재경부로 넘기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양대 나성린 경제학과 교수는 "재무부와 경제기획조정부를 신설,재무부는 조세 금융 국제금융 국고 지방세제를,경제기획조정부는 경제정책 조정,예산편성 및 관리 등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교수는 또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는 산업자원부로,농림부와 해양수산부는 농림수산부로 통폐합할 것"을 제안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