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에게 전통적인 의미의 `킹 메이커'는 없었다. 굳이 찾는다면 `국민'이라 해도 심한 과장은 아니다. '1% 벤처' 가능성만을 갖고 사상 첫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이인제 대세론'의 두터운 지각을 뚫고 민주당 후보자리에 올랐고, 이후 숱한 고비를 넘긴 뒤 끝내 국민적 압력으로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와 `여론조사' 단일화를 이뤘던 게 당선에 결정적 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정 대표의 돌연한 `지지철회' 선언으로 막판 파란이 있었지만 결국 당선을 위한 마지막 고비에 불과했다. 킹 메이커는 없었으나 노 당선자에게도 `대통령 만들기'에 헌신한 인사들은 예외없이 존재, 이미 `논공행상'에 대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노 당선자는 경선 당시 30여명의 단촐한 `벤처 캠프'와 `노사모'가 노풍(盧風)대박을 터뜨린 뒤 대선기획단과 선대위가 출범한 후 현역의원 중심으로 진용이 재편되고 이어 지지율 하락에 따른 탈당 등으로 흔들리다 단일후보로 등극한 후 급격한 세력팽창을 경험했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은 시기적으로 경선 캠프에서부터 동고동락해온 `노무현 사람들'과 대선기획단과 선대위내 의원 중심의 공조직 멤버로 대별된다. `노무현 사람들'은 전략적 마인드를 갖춘 젊은 386세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고 대선기획단 시절에는 동교동계 신파 등 범주류가 주요한 역할을 맡았다면 선대위 체제에선 개혁.쇄신그룹이 전면에 포진하는 양상을 보였다. 또 노 당선자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 민주계 인맥과 부산상고 동문들, 과거 국민통합추진회의 동료들도 빼놓을 수 없는 킹 메이커들이다. ◇`대통령 만든 사람들' = 김원기(金元基) 정치고문, 천정배(千正培) 의원이 우선 눈에 띈다. 지난 3월 경선 초반 단 한명의 `금배지'의 도움도 받지못하던 노 당선자에게 이들의 합류는 천군만마와 같은 것이었다. 통추 시절 인연으로 김 고문은 후보단일화 협상을 총지휘하는 등 노 당선자의 `대리인'이자 바람막이, 조언자로 핵심적 역할을 했고, 노 당선자도 "웬만한 문제는선배님한테 다 맡겼다"고 말할 정도로 두터운 신뢰관계를 맺고 있다. 천 의원은 노풍의 진원지 광주 경선을 앞두고 현역의원으론 유일하게 합류해 캠프를 지휘했고, 이후 정치개혁 드라이브로 `노무현식 새 정치'의 가능성을 전파하는전도사 역할을 했다. 당내 기반이 취약한 노 당선자에게 김근태(金槿泰) 의원의 경선후보 사퇴이후신기남(辛基南) 이재정(李在禎) 임종석(任鍾晳) 의원이 가세한 것도 큰 힘이 됐다. 선대위에서 신 의원은 정치개혁추진위 본부장, 이 의원과 임 의원은 각각 유세.연수본부장과 국민참여운동본부 사무총장으로 맹활약했다. 대선기획단 발족과 함께 노 당선자와 한화갑(韓和甲) 대표간 가교역이던 문희상(文喜相) 단장과 초대 후보비서실장 정동채(鄭東采) 의원, 선거기획통인 이강래(李康來) 기획특보 등이 지지세 하락으로 곤궁에 빠져들던 노 당선자 곁을 지켰다. 지난 9월말 당 내홍 속에 선대위가 출범하면서 노 당선자를 지금에 이르게 한공식라인이 뚜렷하게 형성됐다. 정대철(鄭大哲) 선대위원장은 선대위 사령탑을 맡아 김원기 고문과 함께 노 당선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신계륜(申溪輪) 후보 비서실장은 특히 단일화의 1등 공신으로 신임을 얻었고,이해찬(李海瓚) 기획본부장과 임채정(林采正) 정책본부장은 선대위의 튼실한 허리역할을 해냈으며, 김경재(金景梓) 홍보본부장은 탁월한 `광고'로 선거운동을 주도했다. 김한길 미디어본부장과 허운나(許雲那) 인터넷본부장은 `새로운 미디어.인터넷선거문화'를 이끈 선봉장으로 꼽히며, 이호웅(李浩雄) 조직본부장은 와해된 공조직을 추슬러 노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공동선대위장이기도 한 조순형(趙舜衡) 정치개혁추진위원장은 특유의 `바른 말'로 선대위의 원칙과 기강을 다잡았고, 유재건(柳在乾) 특보단장은 당선자의 취약분야로 지적돼온 외교분야를 보좌했다. 경선 패배를 딛고 새 정치와 신주류의 `얼굴'로 전국을 누비고 다닌 정동영(鄭東泳) 국민참여운동본부장은 추미애(秋美愛) 공동본부장과 함께 노풍 재점화의 기수로 뛰었다. 사상 첫 대선자금 공개를 무난하게 처리하고 어려운 살림을 꾸려간 이상수(李相洙) 총무본부장도 선대위의 중심세력을 형성했다. 송영길(宋永吉) 의원은 당선자의 유세 스케치 등 선거운동 상황을 일기 형식으로 작성, 인터넷에 띄우는 부지런함으로 측면 지원한 공을 인정받고 있고 김희선(金希宣) 여성본부장과 김화중(金花中) 보건의료 특보도 각각 여성표 잡기 역할을 했다. 특히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송곳' 논평으로 당선자의 입장을 적확히 대변하거나 때론 이끌기도 하면서 두터운 신임을 얻었고, 김현미(金賢美) 부대변인은 `현장의 입'으로 활약했다. 노 당선자는 정치 현안에 대한 판단이 필요할 때 신상우(辛相佑) 전 국회부의장과 문재인(文在寅) 변호사 등에 많은 조언을 구했다. 취약지인 대구.경북에서 조직을 다져온 이강철(李康哲) 조직특보와 염동연(廉東淵) 정무특보는 노 당선자를 수시로 독대하는 몇 안되는 참모진이다. 지난해 6월 "노 후보에 대한 믿음과 가능성을 보고 내 발로 뚜벅뚜벅 왔다"면서캠프에 합류한 유종필(柳鍾珌) 언론특보는 경선기간 내내 `1인10역'으로 대언론 관계를 풀어내며 이인제(李仁濟) 후보측과의 공방전도 소화해 냈다. 유 특보와 `투톱'으로 언론창구역을 맡았던 김만수(金晩洙) 부대변인도 신임받는 일꾼이다. 개혁국민정당 창당을 주도한 시사평론가 유시민(柳時敏)씨와 김원웅(金元雄) 의원, 영화배우 문성근 명계남씨도 빼놓을 수 없는 공신이다. 10여년간 당선자를 보좌해온 안희정(安熙正) 정무보좌역, 이광재(李光宰) 전 기획팀장, 서갑원(徐甲源) 의전팀장, 정윤재 부산 사상구 지구당위원장은 386세대 측근들이다. 선대위 실무의 대들보 역할을 한 윤태영 천호선 윤석규 황이수 백원우 이은희이경희 조윤상씨 등도 핵심 멤버다. 양길승 전의전팀장과 김관수 정무보좌역도 경선때부터 한솥밥을 먹은 인사들이다. `김삿갓 방랑기'로 유명한 방송작가 이기명(李基明)씨는 후원회장 자리를 14년째 유지하며 당선자의 고민을 들어줘온 `선생님'같은 인물. 당선자와 가장 가까이서교감하는 수행비서 여택수씨는 당선자에겐 `벗'과 같은 존재이다. 또 유인태(柳寅泰)김정길(金正吉) 전 의원과 원혜영(元惠榮) 부천시장은 통추 멤버로 각별한 사이다. 무엇보다 인터넷 팬클럽 `노사모'는 노 당선자의 `시작과 끝'이다. ◇정책브레인 = 경제분야에서 강봉균(康奉均) 정세균(丁世均) 의원이 각각 경제특보와 국가비전21위 본부장으로 거시와 실물분야를 적극 챙겨왔다. 정 의원은 선대위체제로 전환한 뒤 임채정 본부장과 함께 정책을 총괄했다. 당선자가 각별히 신경쓰는 사회복지 분야에선 김성순(金聖順) 의원의 정책적 조언이 많은 영향을 미쳤고, 농업부분에선 김영진(金泳鎭) 의원의 역할이 컸다. 학계에선 당선자의 인맥 산실인 지방자치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한 김병준 국민대교수와 정책자문단 간사인 조재희 고려대 교수가 행정수도 충청권 건설 등 많은 공약을 발굴하고 전체 정책비전을 조율해온 브레인으로 꼽힌다. 정치분야에선 임혁백 고대 교수와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가, 남북관계를 포함한외교안보분야에선 서동만 상지대 교수가 각각 거론된다. 또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대학원 교수, 장하원 KDI 연구위원, 윤영민 한양대 교수, 신봉호 서울시립대 교수가 경제분과를, 윤성식 고대 교수와 박광국 영남대 교수가 행정분과에서 정책을 개발해 왔다. 노 당선자가 핵심적 과제로 삼고 있는 지방분권에 대해선 성경륭 한림대 교수가,보건복지 분야에선 김용익 김창엽 서울대 교수 및 이상이 제주대 교수가 정책자문단주요 멤버로 활동했다. 이병완 정책위부의장과 정책실무을 조율하고 언론 창구역도 맡았던 배기찬 정책팀장도 핵심멤버다. 이밖에 인터넷 자문단, 청년정책자문단, 40-50 생활정책자문그룹 등이 드러나지않게 당선자의 정책적 `틈새'를 보완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