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농축 우라늄 방식의 북한 핵개발 추진첩보를 99년에 포착하고도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21일 밝혀져 '비공개' 배경을 둘러싸고 논란이 예상된다. 황의돈 국방부 대변인은 21일 북한이 우라늄 농축 관련 장비를 외국으로부터 도입하려고 시도했다는 첩보를 정부가 99년 입수, 이 사실을 미국에 통보했지만 첩보는 단순한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지난 99년 4월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와 함께 망명한 김덕홍씨가 일본 시사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이 플루토늄 대신 우라늄을 이용해 이미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말한 내용도 99년 첩보에 포함될 수 있다고 황 대변인은 덧붙였다. 이준(李俊) 국방장관도 지난 18일 국회 국방위 보고에서 이같은 사실을 비공개로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관련,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 농축 관련 핵심 장비와 기술을 도입했을 것이라는 관측과 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이미 지난 95년부터 북한이 핵 개발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포착, 추적해 왔다. 앞서 98년 11월에는 중국 단둥에서 입수한 북한산 고순도 농축 아연을 근거로 북한이 핵 물질 농축시설을 갖췄을 뿐 아니라 이미 핵탄두를 제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당시 국내 방송사가 보도한 바 있다. 정부는 농축 우라늄 방식의 북한 핵 개발 프로그램을 지난 8월 미국으로부터 통보받았다고 밝힌데 이어 황 대변인도 이날 우리 정부가 북한 핵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은 지난 8월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정부가 지난 8월에 알고도 2개월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논란에 이어 이번에는 정부가 결정적인 증거는 아닐지라도 3년전부터 북한의 핵개발 추진 징후를인지하고도 '쉬쉬'했다는 점에서 다른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북한의 핵 개발 시인 이후 정치권에서 대북 햇볕정책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는 상황에서 '3년간 비공개' 문제는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게 됐다. 정부가 북한 핵개발 첩보를 파악하고도 공표하지 않은 것은 일단 첩보가 단순수준이어서 더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남북 대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일단 첩보 수준의 사실을 나라 안팎에 공식적으로 밝히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듬해인 99년은 햇볕정책이 본격화된 시기여서 정부로서는 당시 결정적인 정보가 아닌 상황에서 북한 핵 문제를 부각시키는데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관측된다. 군 당국은 이에따라 좀더 정확한 정황 판단을 위해 미국에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자체적으로 또는 미국과 공조해 확인 작업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 장관도 18일 국회에서 "한미 정보당국이 제네바 핵합의에 의해 일단 봉쇄된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 시설 이외에 우라늄 농축방법을 이용한 핵개발 관련 첩보에 주목, 긴밀한 정보협력을 유지해왔다"고 보고한 바 있다. 따라서 북한의 핵 개발이 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를 어긴 것이라는 사태의 중대성에 비춰 미국과 지속적인 정보 공유를 해오다 미국이 정보력을 동원해 지난 8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켈리 특사가 이달 초 방북 때 나름대로 자신있게 핵 개발 프로그램 문제를 추궁한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연합뉴스) 이성섭 기자 le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