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시야,빠른 두뇌회전,최종 수비수에서 수비형 미더필더까지 맡을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동료들을 이끄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이런 평가를 받는 그가 운동만 잘 하는 게 아니라 생각도 이렇게 깊었구나... 월드컵 축구 한국 대표팀의 "맏형" 홍명보 선수가 쓴 "영원한 리베로"(은행나무,8천9백원)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홍 선수는 이 책에서 볼 트래핑,키핑,드리블,패스 등 축구의 기본기를 소홀히 한 채 게임을 위한 전술훈련에 치중하는 한국축구의 현실을 지적한다. 또한 운동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도록 만드는 "한국의 운동선수" 교육의 맹점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학교 운동선수는 수업에 빠져도 선생님께 야단 맞는 일이 없고 대학에서도 문제없이 학점 받고 졸업한다는 것.하지만 이는 학교를 빛내라는 배려일 뿐 선수 자신에게는 "독"이 된다는 얘기다. 운동을 그만두고 나면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 선수는 "한국 선수들도 오로지 운동만 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서는 안되며 운동 외에 외국어를 비롯한 기본지식을 많이 쌓고 폭넓은 식견을 갖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수관리를 위해 무조건 합숙만 고집하는 데 대해서도 그는 불만이다. 일본에선 프로선수들의 합숙기간이 1년에 열흘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관리는 선수가 자율적으로 하고 감독은 경기장에서 선수를 평가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세계축구의 흐름과 선진 시스템을 빨리 읽고 받아들이자는 제안도 곁들인다. 지난 22일 열린 스페인과의 월드컵 8강전 승부차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황금발"이지만 그에게도 아픔이 있었다. 국가대표 10년만에 찾아온 왼쪽 피로골절과 그로 인한 장기간의 결장,일부 신문의 세대교체 기사들.하지만 홍 선수는 이를 악물고 뛰었고 당당히 실력으로 주전자리를 굳혔다.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 한가지.지금은 1백83cm의 장신이지만 고교 1학년때까지만 해도 1백68cm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축구화를 벗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고 했다. 월드컵에만 4번 출전할 정도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홍명보.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축구인생과 월드컵 이야기,일본에서 체험한 J리그와 일본 생활,축구철학 등을 털어놓으며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정직하다.축구 또한 정직한 운동이다.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하는 사람에게 행운과 복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