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조'의 벽은 역시 두터웠다. 브라질과 함께 남미축구 최강인 아르헨티나가 이번 월드컵의 우승후보이자 유럽최강인 영국과 90여분에 걸친 사투를 벌였으나 끝내 벽을 넘지 못하자 경기를 숨죽여 지켜보던 아르헨티나 국민은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특히 지난 82년 아르헨티나의 패전으로 끝난 영국과의 포클랜드전쟁과 포클랜드(아르헨지명 말비나스군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영국을 `숙적'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에서 대영국전 패배는 아르헨티나 국민의 자존심에 적지않은 상처를 주었다. 그렇더라도 당면한 경제난에 찌들대로 찌든 국민들은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해줄 한 줄기 후련한 골을 잔뜩 기대했으나 선수들이 평소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데다 영국의 빗장수비에 걸려 생각처럼 경기가 풀리지않자 시종일관 탄식만 터트릴 뿐이었다. 대영국전이 벌어진 이날 일상생활처럼 벌어지던 경제난 항의시위도 '휴전'에 들어가 모처럼 아르헨티나 전역이 평온을 유지했다. 출근과 등교시간을 막 마친 수도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는 이번 월드컵 F조예선 '빅 게임'인 아르헨-영국전 관전을 위해 나다니는 행인이 없을 정도로 텅비었다. 수업시간중 TV시청을 허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각급학교에서도 결국 교육부의 허락으로 수업을 멈춘 채 경기를 지켜봤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번화가인 플로리다와 누에베 데 훌리오, 코르도바 거리와 금융가인 바르톨로메 미트로 등은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인적이 끊겼을 정도로 조용했다. 또 벨그라노 등 주택과 아파트 밀집지역 역시 행인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으며, 아르헨팀의 슛이 불발로 그칠 때마다 아쉬움의 탄식만 이따금 들릴 뿐이었다. 결국 아르헨티나팀이 월등한 경기를 벌이고도 영국의 미드필더 데이비드 베캄에게 허용한 선제골를 만회하지 못한 채 경기를 끝내자 모두가 허탈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가 이미 아프리카의 강호 나이지리아를 1-0으로 제압한데다 스웨덴과의 경기도 남겨놓고 있어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분위기이다. 주아르헨티나 한국대사관의 박완수 홍보참사관은 연합뉴스 전화회견에서 "이번 경기가 빅게임인 만큼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비롯해 전국의 도시가 텅 빌 정도로 조용했다"며 "경제난과 영국과의 포클랜드군도 영유권 분쟁에 따른 스트레스 해소를 잔뜩 기대했던 국민들이지만 선수들이 열심히 뛰고도 결국 1-0으로 지자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박 참사관은 "대사관과 교민회에서도 교민과 현지인들의 관전편의를 위해 대형TV를 설치해 아르헨티나를 응원했으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안타까웠다"며 "그래도 아르헨티나가 첫 경기를 이겼고, 스웨덴과의 남은 경기도 있는 탓인지 지나치게 흥분하는 등의 극성스런 모습은 없었다"고 전했다. 한편 클라린과 라 나시온, 카날 도스 등 아르헨 언론들은 경기결과를 신속히 보도하면서 "선수들의 기량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았지만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며 "사력을 다한 전.후반 90분이었으나 운도 따르지 않았고, 영국의 철벽수비에 걸려 골과 연결하는 데는 끝내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성기준특파원 bigpe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