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 전반 황선홍의 천금같은 선제골을 도운 이을용(27.부천SK)은 보기 드문, 한편의 드라마같은 경력을 가진 선수다. 축구가 싫어 그라운드를 등졌다가 우여곡절끝에 다시 축구화를 신게 된 케이스로, 청소년대표-올림픽대표 등 엘리트코스도 밟지 않아 대부분의 국가대표 선수와는동떨어져있다. 이을용은 94년 강릉상고 졸업을 앞두고 명문대에 진학하기로 돼있었으나 `실력외적인' 요인이 작용하면서 대학의 꿈을 접어야 했다. 강원도 산골짜기의 황지초등학교를 시작으로 강릉중, 강릉상고를 거치면서 오로지 축구가 좋아 내달렸던 이을용은 이 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축구에 회의를 품은 이을용은 얼마 지나지 않아 두번째 좌절을 맛봐야 했다. 대학간판보다는 실력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다시 축구에 매달렸으나 이번에는 비슷한 이유로 청소년대표팀에서조차 탈락했고 이 충격은 스무살 산골 청년을 그라운드를 떠나게 만들었다. 축구와 이별을 고한 이을용은 이곳 저곳을 정처없이 방황했다. 오로지 환락을 추구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까지하면서 종전까지 겪은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도 경험했다. 이을용은 95년 한국철도 이현창 감독에 의해 다시 축구화를 신었다. 고교시절그의 기량을 높이 샀던 이 감독은 전지훈련차 강릉에 머물다 그의 소식을 접한 뒤이을용이 웨이터생활을 하던 제천까지 찾아가 설득했다. 이을용은 이 감독의 끈질긴 설득에 한국철도(당시 철도청)소속 선수로 그라운드에 복귀했고 상무를 거쳐 97년 말 프로축구 신인드래프트에서 부천의 지명을 받았다. 97년 말에는 연상의 여인과 결혼해 마음의 안정까지 찾았고 98년부터 부천 SK의 막강 미드필더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99년 3월에는 생애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경기종료 직전 김도훈의 결승골로 세계 최강 브라질을 1-0으로 이긴 바로 그 경기였다. 176㎝, 69㎏으로 체격은 빼어난게 없지만 체력이 뛰어나고 넓은 시야에 패싱력도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히딩크 사단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리를 굳히는 듯했다. 더욱이 `영원한 라이벌' 이영표와의 왼쪽 미드필드 경쟁에서 밀려 선발라인업에서 제외될 놓였었다. 그러나 이영표가 최근 부상하는 바람에 `대타'로 경기에 나선이을용은 이날 전반 26분 폴란드 진영 왼쪽에서 황선홍에게 빠르고 정확한 패스를연결, 선제골을 이끌어내는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일부 축구전문가들은 공격적인 플레이가 부족하다며 비판하기도 한다.또 플레이중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어이없는 패스미스가 종종 나오는 것을 지적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90분내내 줄기차게 뛰는 것을 바라는 히딩크 감독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선수. 지난해 8월 네덜란드전지훈련 이후부터는 한 번도 대표팀에서 제외되지 않은 것이 말해주듯 이을용은 히딩크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아왔고 이날 멋진 어시스트로 그 신뢰에 보답했다. (부산=연합뉴스) meola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