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행사가 정치적 참정권이라면 은행설립은 경제적 참정권입니다.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교포사회에 미치는 충격은 오히려 투표권보다 훨씬 더 클 수 있습니다" 지난 25일 간사이고긴(관서흥은의 일본식 발음)의 이희건 회장(전 신한은행회장·84)이 부정대출에 의한 배임혐의로 일본 경찰에 구속되고 난 이후 재일교포 재계의 분위기는 암울하다. 교포사회 속사정에 밝은 금융인 K씨는 재일 교포들의 경제적 존립기반이 일거에 무너지고 있다며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교포들은 금융사각지대로 내몰릴 날이 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K씨의 지적에서도 나타났듯 교포들 앞에 닥친 금융환경은 ''위기'' 그 자체다. 일본 은행들의 문턱을 넘기 어려운 재일교포들이 힘을 한데 모아 세우고 돈을 빌려 쓰면서 키워 왔던 신용조합들은 34개중 17개가 경영부실 또는 매각 등의 이유로 간판을 내린 채 사라졌다. 가장 최근에는 일본 전역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간사이고긴이 지난 2000년 12월 무너진 것을 비롯 도쿄 일대의 한국계 신용조합중 가장 덩치가 컸던 도쿄쇼긴도 동시에 파산 선고를 받았다. 지난 연말에는 3개 신용조합이 1개로 통폐합됐다. 이에 따라 정상적으로 영업중인 곳은 현재 15개뿐이며 1955년 간사이고긴 설립 이후 약 반세기의 역사를 이어온 한국계 신용조합은 최근 수년간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이 됐다. 한국계 신용조합들의 여수신 규모는 간사이고긴이 파산 처리되기 전만 해도 2조2천억엔대를 헤아렸다. 그러나 신용조합에 대한 불안 고조로 예금이 속속 빠져 나가면서 현재 15개 조합에 예치된 예금은 4천억엔대로 급감했으며 이들 조합이 고객들에게 빌려 준 돈 역시 약 4천5백억엔으로 오그라들었다. 교포들의 돈줄인 조합이 잇달아 무너진데다 교포들의 밥줄 역할을 해온 야키니쿠(불고기)식당까지 광우병 파동으로 된서리를 맞자 교포들은 돈을 벌 곳도 빌려 쓸 곳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