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7:13
수정2006.04.02 07:16
서울 광교에 있는 조흥은행 본점 빌딩 외벽엔 백두산 호랑이가 '어흥!'하고 포효하는 대형 벽화가 내걸려 있다.
지난 97년말 외환위기 이후 존폐의 기로에 섰던 조흥은행이 위기를 수습하고 다시 도약하려는 모습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1백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고(最古) 은행인 조흥은행이 이젠 세계 금융변화에 도전해 한국 은행의 자존심을 되찾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실제 조흥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부실여신이 급증해 지난 99년 정부로부터 2조7천1백79억원의 공적자금을 수혈받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었다.
그러나 2년만인 올해 이 은행은 부실여신을 과감히 털어내고 수익력을 회복해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 등 대부분의 경영지표를 선진 우량은행 수준에 끌어올렸다.
조흥은행이 이처럼 짧은 기간에 성공적으로 위기를 탈출한 데는 물론 공적자금 투입 이후 임직원들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감내한 것이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그같은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었던 건 위성복 행장의 능력과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게 금융계의 공통된 평가다.
"자칫하면 한국 금융역사에서 아예 사라질 뻔했던 조흥은행을 독자적으로 기사회생시킨 것을 생각하면 조흥은행 사람들은 위 행장을 업고 다녀도 부족할 판"(다른 은행 관계자)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위 행장이 조흥은행장에 첫 취임한 건 지난 98년 8월.
장철훈 전 행장이 은행 부실화의 책임을 지고 퇴진하자 전무로 있던 위 행장이 자리를 이어 받았다.
그는 행장에 취임하자마자 비상경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혼란에 빠진 직원들을 추스려 위기탈출을 모색했다.
당장 강원은행 충북은행 현대종합금융과의 합병을 결단했고 인원감축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조흥은행의 정상화 기반을 다졌다.
당시 1만1천여명에 달했던 인원을 현재 6천5백여명 수준으로 40% 이상 줄였고 점포 수도 전국 6백42개에서 4백52개로 30% 감축했다.
'위 행장이야말로 조흥은행을 살려낼 것'이란 직원들의 굳은 신뢰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위 행장은 곪아터진 부실 기업을 처리하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아남반도체 동방 등 워크아웃 기업을 조기에 정상화시켰고 쌍용양회 쌍용자동차 등도 큰 잡음없이 채권단 채무조정을 이끌어내 회생의 기반을 마련해 줬다.
이미 퇴출이 결정된 해태제과는 은행의 추가 지원 없이 기업가치를 올려 해외 매각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40년 가까운 은행원 생활중 대부분을 여신 쪽에서 일한 경험과 노하우가 진가를 발휘한 셈이다.
위 행장은 실제 80년대 중반 영업3부장 시절 부실 해외 건설사를 처리했고 91년 수서사건이 터졌을 땐 주채권은행 담당 부장으로서 피해를 극소화하는데 앞장섰다.
자연스레 '부실 해결사'라는 별명이 따라 붙은 것도 그 때부터다.
위 행장이 위기 해결사 노릇만 한 것은 아니다.
분명한 비전을 갖고 미래를 향한 은행 경영 혁신을 추진한 것은 또다른 공로다.
행장 취임후 은행권 처음으로 고객 데이터웨어하우스(DW)를 구축하고 리스크 관리와 여신관리, 종합수익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일찌감치 선진 은행경영 인프라를 준비한 것이다.
또 인터넷뱅킹 전자화폐사업 주류대금결제사업 등 전략적 특수사업에 적극 진출하고 신용카드 부문을 독립시켜 은행의 수익기반을 확대하는 수완도 보였다.
이같은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조흥은행은 BIS 자기자본비율이 지난 97년말 6.5%에서 금년말 10.3%, 총자산이익률(ROA)은 마이너스 0.72%에서 1.0%, 직원 1인당 영업이익은 1억4천6백만원에서 2억5천만원으로 높아졌다.
한국전문경영인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가 최근 잇따라 위 행장에게 '올해의 경영인 대상'을 수여한 것도 그런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위 행장은 내년엔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 조흥은행을 종합금융그룹이란 반석 위에 올려 놓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신용카드 자산운용 프라이빗뱅킹(PB) 투자은행업무(IB) 방카슈랑스 등 미래 수익창출 부문을 5대 핵심사업으로 설정, 적극 추진키로 했다.
"인생의 대부분을 바친 조흥은행이 세계 금융시장에서 백두산 호랑이처럼 포효하는 모습을 보는게 남은 꿈"이라는 위 행장은 오늘도 그 날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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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39년 전남 장흥 출생
광주고, 서울대 상학과 졸업
64년 조흥은행 입행(광주지점)
조흥은행 사우디아라비아 주재원, 싱가포르 사무소장, 영업3부장, 심사부장 전무이사 등 역임
98년8월 조흥은행장에 취임했다가 그해 12월 상임 고문으로 물러남
99년4월 조흥은행장에 재취임
취미:등산 축구 골프 스키
저서 및 논문:로드쇼(해외 투자가가 보는 한국의 은행), 은행의 경쟁력 제고를㎸?부실채권 정리방안
생활철학:'인생을 살아가는데 항상 지(知)를 덕(德)보다 앞세우지 않는다'
개인 홈페이지:www.sbwee.pe.kr
가족:부인 하순자(河順子.58)씨와 1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