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세계무역센터를 붕괴시킨 여객기 자살테러 주범에 대한 미국의 전쟁선포로 세상이 어지럽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에 대한 걱정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늘은 높고, 바람도 좋은데 표정들이 밝지 않다. 하늘 높이 날아볼까. 그게 괜찮을 것 같다. 가슴 깊이 쌓인 스트레스를 확 날려줄 초경량항공기(ULM). 포도향기 가득한 경기도 화성의 어섬비행장을 찾았다. 푸두둥, 푸두둥... 처음 대한 ULM의 조종석 바로 앞 위쪽에 달린 엔진의 매끄럽지 않은 소리에 걱정이 앞섰다. 도대체 뜰 수 있기나 한 걸까. 조종사와 단둘이 앉는 공간은 비좁기 그지없다. 뼈대가 노출된 기체도 허술해 보인다. 조종간을 잡은 에어로피아항공의 이규익 수석교관(36)이 눈치를 챘는지 한마디 한다. "마음 편히 가지세요" 시화방조제로 인해 드러나 굳은 뻘을 조금 돋우고 다져 만든 활주로 끝. '왱'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한 ULM은 순식간에 활주로를 박차고 뛰어 올랐다. 여객기처럼 무언가 몸을 뒤로 당기고, 이륙 직후 조금 떨어지는 듯한 느낌은 없었다. 오른쪽으로 선회했다. 고도 1백m. 기체가 수평을 이루면서 파란 하늘뿐이었던 시야에 아래쪽 굳은 뻘이 들어왔다. 멀리 초소로 쓰였던 구조물과 그 뒤로 닭섬이 보였다. 공룡알 화석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닭섬 주변은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칠면초다. 칠면초는 서남해안의 갯벌에 자생하는 염생식물. 물이 빠진 뒤 딱딱하게 굳은 갯벌의 육상화를 알려주는 식물이기도 하다. 인천공항 고속도로 주변에서 쉬 볼 수 있다. 닭섬을 기점으로 왼쪽으로 선회. 앞으로 경기도 안산의 윤곽이 보이고, 다시 시화방조제가 어렴풋하다. 대부도도 보였다. 고도는 어느새 3백m. 시속 70km. 좌석옆의 바람막이 창이 없어 오토바이를 타고 하늘을 달리는 듯한 느낌. 얼굴을 옆으로 내밀어 보았다. 눈을 뜰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바람이 부딪는다. 그러나 이 ULM은 스포츠카에 해당한다고 한다. "초경량항공기는 고정익 타면조종형(조종타면을 움직여 방향과 고도를 조종)과 체중이동형(몸을 움직여 조정)이 있는데 전자는 스포츠카, 후자는 오토바이격이죠. 타면조정형이 보편화되어 있어요" 국내 동호인 클럽은 20여개, 등록 비행기는 1백50~2백여대.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은 1천여명선. 엔진이 멈추어도 활공할수 있고 짧은 평지에도 착륙할수 있는 등 안전한 편이어서 동호인수가 늘고 있다. 안산 송도 대천 등지에도 비행장이 있다. 8~9천만원선인 ULM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 교관의 설명을 듣다보니 썰물때면 드러나는 제부도길이 멀리 보인다. 다시 1백80도 선회. 까마득한 아랫쪽 얕은 등성이에서 뛰어내리는 패러글라이더들이 개미 같다. 비교적 맑게 보이는 그 앞쪽에는 드라이브 나온 듯한 사람들의 차량이 줄지어 서 있다. 또다른 ULM이 반대방향으로 낮게 지나가고, 왜가리인 듯한 흰새들의 무리가 물위에 그림자를 비치며 유유히 날아간다. 가슴이 탁 트였다. 반팔 티셔츠라 조금은 한기가 돌뿐이었다. 활주로엔 2대의 ULM이 이륙채비를 하고 있다. 오후 늦게 아빠 무릎에 앉아 생전 처음 ULM을 타본 승하(7)양에게 물었다. "겁나지 않았니" "아니요. 정말 신났어요" 화성=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