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돌아왔다. 종합지수는 급등했고 거래량도 평균 수준을 회복했다. 시장은 활기를 되찾았고 성급한 투자자들은 8월 랠리를 외쳤다. 매수 주체의 위력으로 호재는 부각되고 악재는 감춰졌다. 그러나 시장의 불안감은 좀처럼 잦아들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의 이유 없는 매수에 대해 절대적 신뢰를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 외국인 매수세, 뭔가 있나 = 모처럼 폭발한 외국인 매수세가 국내 증시에 불을 붙였다. 8월 첫째날 외국인은 반도체, 통신, 우량금융주 등을 2,364억원 어치 집중 매수했다. 지난 5월 22일 3,017억원 이후 최근 10주 중 가장 많은 순매수 규모다. 특히 전체 순매수 규모의 절반이 넘는 1,547억원 어치가 삼성전자에 대한 순매수여서 그 배경을 둘러싸고 관심이 모아졌다. △ 뉴욕증시 및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의 최근 강세 △ D램 현물가의 하락세 둔화 △ 현대투신 등 국내 구조조정 가속화 및 국가신용등급 향상 가능성 △ 아르헨티나 등 이머징 마켓의 금융위기 가능성 축소 △ 일본 증시 및 환율 안정 △ 경기 바닥에 대한 공감대 확산 등 이유로 꼽힐만한 요인들은 죄다 등장했다. 그러나 시장 관계자들조차 이날 외국인의 강도 높은 매수세에 대해 딱 부러지는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특히 반도체 집중 매수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왔다. 국내 증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하루 만에 크게 개선된 것도 아닐 뿐더러 상승 추세 전환의 열쇠라는 세계경기의 회복 시그널도 여전히 미약하기 때문이다. 랠리란 아무도 기대하지 않을 때 찾아오며 아무도 랠리에 대한 촉매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랠리에 대한 선제 신호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유를 찾지 못한 외국인 매수세가 그 신호일지 지켜봐야 할 듯 싶다. ◆ 유동성 장세 예고편 = 전날 국민-주택은행이 이 달부터 1년 만기 정기예금 고시금리를 사상 처음으로 연 4%대로 인하, 은행권 전체에 금리인하 바람이 불고 있어 유동성 장세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특히 8월 첫날 국민-주택은행, 삼성증권 등 우량 금융주에 외국인 매수세가 몰리면서 증권, 은행업종 지수가 각각 9.88%, 5.03% 폭등, 유동성 장세를 점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일부에서는 이날 반등이 지난 4월 랠리 초기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당시 상당수 투자자가 랠리에서 소외됐다는 점을 강조, 시중 부동 자금이 학습 효과를 발휘하며 8월 랠리에 동참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 관계자들은 본격적인 유동성 장세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 기업실적 시즌 통과 △ 매수 주체 및 주도주 부상 △ 경기 회복 시그널 등 몇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며 이들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시중에 아무리 자금이 풍부해도 증시로의 유입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형범 L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상반기 기업실적 발표가 8월 중순까지 계속된다”며 “특히 이 기간 중 실적이 좋지 않은 기업들이 몰려 있을 것으로 보여 부동 자금 흡수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인수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증시가 부동자금을 불러 들일 만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며 “저가메리트만으로는 시중 자금 유입에 한계가 있으며 투자주체와 선도주의 선순환 흐름이 형성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잠자는 뇌관 = 종합지수가 21.24포인트, 3.64% 급등했다. 상승률로만 따진다면 지난 5월 17일 3.87% 이후 11주 중 최고치다. 전날 2억주를 간신히 넘겼던 거래량이 4억주를 훌쩍 넘어섰고 전업종 고른 오름세를 기록한데다 상승종목도 678개를 기록하는 등 체감지수도 높았기 때문에 추가 상승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러나 산이 높다면 골이 깊다고 했다. 외국인 중심의 수급상황이 여전히 불안한 상황에서 시장이 이날 급등에 대한 부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은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이날 옵션 거래량이 659만3,917계약을 기록, 지난 7월 11일 기록했던 479만3,889계약 기록을 3주만에 경신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향후 상승 추세를 점치는 낙관론에 맞서 여전히 대세 상승은 멀었다는 신중론이 만만찮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또한 외국인 매수 종목이 삼성전자, SK텔레콤 등 일부 종목에 국한된 상황에서 추가 자금이 유입되지 않을 경우 급정거 가능성도 높은 셈이다. 급등에 대한 부담으로 조정이 있을 경우, 이날과는 반대로 시장은 악재에 민감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날 시장이 철저히 외면했던 수출 급감 소식이 되새김될 수도 있다. 1일 뉴욕에는 7월 구매관리자협회(NAPM) 제조업지수가 전해진다. 한경닷컴 임영준기자 yjun19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