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때로 한사람에게 갖은 불행의 짐을 지운다.

삶의 무게에 휘청이는 모습을 비웃듯 조롱하듯 절망은 얼마든지 같은 어깨에 내려앉는다.

덴마크 출신의 천재감독 라스 폰 트리에의 "어둠 속의 댄서"(원제 Dancer In The Dark.24일 개봉)는 고통의 극단에 내던져진 여자의 이야기다.

여자는 극한 비극을 비집고 거룩한 희생과 구원을 꽃피워낸다.

미국 워싱턴주의 작은마을.체코에서 이민와 금속공장에서 일하는 여자 셀마(비욕)는 선천적 질병으로 장님이 될 날을 앞두고 있다.

날로 어둠이 영역을 넓혀가는 와중에도 셀마에겐 자기처럼 눈이 멀어가는 아들에게서 "빛"을 지켜주겠다는 소망뿐이다.

아들의 수술비를 모으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그를 지탱하는 것은 뮤지컬.틈만나면 교회 뮤지컬 연습장에 달려가는 그는 건조한 일상에서도 기적처럼 춤과 노래를 찾아낸다.

그의 상상속에서 공장의 기계음은 경쾌한 리듬으로 화하고 자신은 뮤지컬의 주인공이 된다.

동시에 그를 둘러쌌던 절망도 환희로 뒤바뀐다.

하지만 셀마를 옭아맨 불행의 그물은 단 한점의 희망까지 남김없이 걸러내고 만다.

두꺼운 렌즈로도 더이상 빛을 잡아둘 수 없게 된 그에겐 배신과 살인누명이라는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에서 현실과 환상은 빛과 어둠으로 나뉜다.

쇠비린내 나는 칙칙한 현실은 들고찍기로 거칠게 흔들리지만 뮤지컬을 통한 "환상"은 화사하고 눈부시게 빛난다.

1백여대의 카메라로 찍었다는 역동적인 뮤지컬 장면은 두고두고 인상깊다.

아들을 위해 희생하는 모성애는 보는 이를 여지없이 울리고 만다.

세상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았느냐"며 회유하지만 여자는 "나는 이미 물을 보았으니 다 본셈"이라며 "나는 다 보았다"(I"ve seen it all)고 노래한다.

아들을 위해 목숨마저 버리는 그가 죽음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춤추며 노래할때 눈물 흘리지 않을 자 과연 누구랴. 하지만 그 원천은 엇갈릴만하다.

영화가 이끌어내는 격한 감정은 견디기 어려울만큼 거대한 감동인 동시에 참아내기 힘들만큼 불편함일 수도 있다.

평 역시 극명히 갈라섰다.

지난해 칸영화제는 이 영화에 대상인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안기며 극찬한 반면 타임지등은 "지독한 신파이자 과거로의 회귀"라며 냉소를 보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출신의 세계적 팝가수 비욕의 연기만큼은 일치된 격찬을 이끌어냈다.

나이를 가늠키 힘든 그의 얼굴은 아이의 천진난만함에서부터 악마적 사악함의 정점까지 수천가지의 표정을 담아내는 그에게 뉴욕타임즈는 "기적에 가까운 연기"라 했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