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경제의 돌파구는 수출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기침체에 따라 내수가 더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해외시장 개척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선진국의 기술장벽과 후발개도국의 추격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해외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하는 업체가 우리 주위에 적지않다.

도전정신으로 가득찬 이들 기업을 찾아 비결을 알아본다.

미국 뉴욕에서 경인양행의 염료를 파는 허정선씨.

그는 거래선으로부터 샘플을 갖고 들어오라는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카달로그를 보내고 대여섯번 연락을 한 끝에 소중한 상담기회를 얻은 것.

대상업체는 펜실베니아주 리딩에 있는 시엥케.

허씨는 차 트렁크에 염료샘플을 가득 싣고 콧노래를 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지도를 보고 샌드위치를 먹으며 5시간 질주한 끝에 시엥케에 도착했다.

구매담당자와 허용된 상담시간은 불과 30분.

그 짧은 시간동안 자사 제품의 장점을 소개했다.

상담후 차를 몰고 돌아오길 또다시 5시간.

이런 식으로 시엥케를 방문한게 10여차례.

왕복운전거리로 1만km.

그렇게 해서 따낸 주문이 불과 4천달러.

짜증을 낼 만도 하지만 내지 않았다.

첫 주문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는 알고 있어서다.

시엥케가 고정거래처로 이어진 것은 물론이다.

경인양행의 미국내 판매대리점 대표였던 그는 지난95년 본사 기획실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해외사업부장,전무,부사장을 거쳐 지난해 2월 35세 나이에 사장 자리에 올랐다.

장인인 창업주 김동길 회장이 기술자 출신이라면 허사장은 미국 뉴욕 다울링대 경영학석사 출신의 세일즈맨이다.

미국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나와 영어가 능숙하다.

회사일에 관여한 10여년동안 주로 해외시장 개척을 맡아온 것도 이 때문.

그는 한번 물면 결코 놓지 않는 스타일이다.

1년에 1백일 이상을 외국에 다니며 바이어를 만난다.

허 사장만 이렇게 뛰는 것은 아니다.

20여명에 이르는 수출부서 직원은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먹으며 미국 유럽 동남아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이들은 프로정신으로 무장돼 있다.

염료를 1kg이라도 더 팔기위해 중남미의 오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경인양행이 지난해 수출한 염료는 4천1백만달러어치에 달한다.

국내 염료수출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수출지역은 아시아 미주 유럽 아프리카 남미의 50여개국.이중 페루 등 10여개국에선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성공적인 해외시장 개척은 적극적인 해외마케팅과 더불어 품질이 밑바탕이 됐다.

이 회사는 모두 3백여종의 염료를 생산하고 있다.

반응성염료를 비롯해 직접,산성,형광,분산염료 등 대부분 품목을 내놓고 있다.

생산제품의 3분의 2는 수출된다.

이중 몇몇 제품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반응성 블랙과 터키시블루가 바로 그것.

반응성 블랙은 면제품의 염색에 쓰이는 검은 색 염료.

30여개국에 수출되는 이 제품은 "코리안 블랙"으로 불리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창업주인 김동길 회장은 자신이 직접 실험실에서 밤을 지새울 정도로 연구개발을 중시한다.

전직원 3백50명중 50명이 연구개발인력이다.

연구개발실은 공장이 아닌,회장실 바로 아래층에 있다.

또 연구소 출신을 우대해 이곳 출신이 주요 부서의 책임을 맡고 있다.

경인양행의 목표는 세계 제1의 염료업체이다.

이를 위해 면과 폴리에스테르 혼방제품을 한꺼번에 염색하는 염료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해외거점도 늘리고 있다.

모로코에 판매망을 설치,아프리카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수출시장이 50여개국밖에 안됩니다. 염료를 쓰는 국가가 1백20개국이 넘으니 적어도 70개국은 추가할 수 있을 겁니다"

허 사장은 염료가 성숙시장에 접어들고 있으나 눈을 돌려보면 아직 개척할 시장이 많다고 말했다.

섬유 신소재가 개발되면 될수록 염료 신제품 개발여지가 많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가 올해 염료수출을 작년보다 22%나 늘려 5천만달러로 잡는 것도 이같은 적극적인 사고와 도전정신에서 비롯된다.

(02)3665-1102

김낙훈 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