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우량은행에 대해서도 합병을 요구하는 배경에는 국내 은행산업이 ''오버뱅킹(Over-Banking,은행공급과잉)'' 상태라는 판단이 깔려있다.

경제규모에 비해 은행수나 점포 인력 등이 너무 많아 과당경쟁과 중복투자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 정부의 논리 ="최근 현대전자에 대해 1조원의 신디케이트론을 추진할때 각 은행이 금감위의 특별승인을 받아야 했다. 은행마다 동일인여신한도를 초과했기 때문이다. 국내은행들이 다 고만고만한 은행들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금감위 관계자는 국내 은행산업이 오버뱅킹 상태라는 점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실 현재의 은행들이 모두 간판을 유지하려면 저마다 정보기술(IT) 투자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야 하고 똑같은 형태의 점포가 거리마다 적게는 3∼4개, 많게는 7∼8개씩 밀집해 과당경쟁을 벌여야 한다.

심지어 대형 신용금고보다 적은 제주은행(자산 1조3천억원)조차 연간 4백억원을 IT 투자비로 써야 유지할 수 있는 현실이다.

과당경쟁의 결과 국내은행의 예대마진은 미국(5%대)의 절반인 2∼3%에 불과하다.

정부는 은행 점포의 영세성을 오버뱅킹의 구체 근거로 제시한다.

17개 일반은행의 6월말기준 점포당 대출금은 평균 5백21억원(11개 시중은행은 5백66억원)에 불과하다.

점포당 예수금도 8백8억원에 그쳐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은행에 한참 못미치고 있다.

◆ 전문가 견해 =전문가들은 오버뱅킹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국제금융의 권위지인 ''뱅커'' 7월호를 인용, 국내 10대은행의 총자산은 일본의 11분의 1, 미국의 8분의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특히 "국민 주택은행 등은 수확체감의 상태에 빠져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이 미즈호그룹(다이치강교 니흔코교 후지은행) 등 4개 금융그룹으로 은행산업을 재편하는 것과 비교해 한국도 은행수를 줄이고 합병으로 대형화를 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외환위기 이후 33개 은행중 11개가 퇴출 합병되고 5만명이 해고됐는데도 미진하다면 정부 구조조정이 잘못됐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과 GDP(국내총생산)가 비슷한 캐나다도 11개의 시중은행이 있는 점을 들어 오버뱅킹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김병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재정.정책자금 집행을 시중은행들이 맡고 있는 상황을 따져 보면 오버뱅킹으로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