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결산법인에 대한 회계감사가 금융시장의 ''시한폭탄''으로 떠오르고 있다.

회계법인들이 기업 결산보고서에 대해 무더기 퇴짜 판정을 내릴 경우 금융시장의 일대 혼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 배수진 친 회계법인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은 전무후무한 징계 및 소송위기로 떨고 있다.

대우그룹 부실감사로 징계를 당한 산동회계법인이 최근 ''회계감사 불능''을 선언하고 자진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

청운회계법인도 잇따른 부실감사가 적발돼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뒤 문을 닫았다.

회계법인들이 이번 감사에 ''배수진''을 치고 임하는 이유다.

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은 결산감사를 앞두고 분식회계를 해온 악성 법인고객을 별도로 분류, 특별 관리에 나섰다.

이들 업체에 대해선 감사팀 사령탑인 파트너(회계법인 임원)를 모두 교체했다.

오랜 기간 한곳을 감사하면서 생길 수 있는 ''누이좋고 매부좋기 식'' 병폐를 막기 위한 조치다.

회계법인들이 부실 기업들에 대한 감사를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대형 회계법인의 한 임원은 "최근 시중에 부실업체로 알려진 한 중견 대기업이 감사를 의뢰했지만 거절했다"며 "위험한 폭탄은 피하고 보자는게 회사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지난 8일 ''외부감사 및 회계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통해 중대한 분식회계가 감사인 또는 공인회계사의 묵인이나 방조 등 고의에 기인한 경우 등록 취소(회계사 자격박탈) 등의 제재를 부과하는 동시에 형사고발키로 했다.

◆ 전전긍긍하는 기업들 =연말 외부회계감사를 앞두고 벤처.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들조차 "혹시 우리도 모르는 부실 매출이 드러나는 것 아니냐"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경기침체로 고전중인 건설업체와 코스닥 등록을 위해 매출실적을 부풀린 일부 벤처기업의 경우 올 회계감사가 강도 높게 진행되자 초긴장 상태다.

연말 결산 기업들은 전체 상장사중 81.5%, 코스닥 등록법인의 88.8%에 달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우 부실회계가 드러난 뒤 지난해 대기업과 우량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회계처리를 엄격하게 처리했다"며 "그러나 부실 업체의 경우 외부감사로 치부가 드러날까봐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몇몇 기업들은 2000년도 결산보고서를 내기에 앞서 최근 회계법인들이 중간감사를 통해 회계지도에 나서자 외부회계팀과 곳곳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일부 기업은 ''아량''을 기대하며 회계법인을 ''접대''하느라 야단이다.

◆ 금융시장의 시한폭탄 =기업들의 결산 재무제표에 대해 무더기 부적정 판정이 내려질 경우 금융시장의 대혼란이 우려된다.

기업이 부적정이나 의견거절이란 감사의견을 받으면 당장 주가가 하락하고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돼 자금 조달줄이 막힌다.

은행들이나 주주는 기업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투자나 대출을 하기 때문이다.

또 신용평가들도 해당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에 대해 신용평가를 하향 조정, 회사채나 CP(기업어음) 발행도 어려워진다.

결국 해당기업은 퇴출될 운명에 처한다.

시중은행이 부적정 의견을 받으면 외국에서 제공한 채권이 회수되고 예금인출에 따른 도산상태에 빠질 수 있다.

한국기업 전반의 투명성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가 추락하는 등의 후유증도 우려되는 파장이다.

손성규 연세대 교수는 "회계법인이 종종 기업의 부실을 눈감아주면서 감사수임료를 받아온게 관례였지만 이젠 조그마한 잘못이라도 감독당국의 징계는 물론 소액주주와 채권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을 피할 수 없게 됐다"며 "이같은 환경변화를 부실회계를 근절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구학.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