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레브에서 드브로부니크까지.

크로아티아 종주여행은 비행시간을 포함, 열흘이 걸렸다.

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한발의 총성이 울린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를 지척에 둔 나라.

동서양 세력다툼의 중핵이란 지리적 약점, 역내의 민족.종교분쟁으로 인한 "인종청소"의 피 비린내로 기억되는 유고연방의 서쪽 지역.

삶의 터전을 할퀴고 간 탄흔과 포탄자국 외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속에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적막하기만 했던 자그레브에서의 첫날밤은 한기마저 느끼게 했다.

기우였다.

유럽전역을 뒤덮은 먹구름 아래 자그레브의 아침은 단정했다.

플리트비츠 호수국립공원, 아드리아해 연안의 자다르, 크르카 국립공원, 스플리트, 드브로부니크를 거치면서 점점 크로아티아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로마와 중세시대 유적 그리고 현재 삶의 모습이 중첩된 도시들, 무엇보다 투명한 자연이 탐이 났다.

지난달 31일부터 9일까지 둘러 보았던 크로아티아의 도시와 자연을 두번에 나눠 싣는다.

인구 1백20만명.

인구로 치면 우리나라 대전만한 크기인 수도 자그레브의 아침은 한갓졌다.

마침 11월1일이 이 나라의 현충일.

1992년 유고연방에서의 완전 분리독립을 전후한 내전과 전쟁속에 죽은이들을 추도하는 날이다.

무려 30여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참호란 뜻의 도시이름에서 오랜 생존투쟁의 단면을 읽을수 있었다.

위 아래 지역으로 나뉘는 자그레브의 윗지역으로 갔다.

첨탑높이가 1백5m인 신고딕양식의 대성당이 웅장했다.

자그레브의 상징이다.

역시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 막스성당, 사보르라고 부르는 의회의 건물 등 크로아티아 정치1번지의 모습도 살폈다.

이반 메스트로비치라는 크로아티아 유명 조각가의 숨결이 곳곳에 배여 있다.

탁자형 좌판을 놓고 농산물이며 생필품을 파는 돌락시장은 우리나라 시골 5일장을 연상시켰다.

시내 도보여행은 반나절로 충분했다.

플리트비츠 호수국립공원에서부터 크로아티아의 자연에 젖었다.

"크로아티아의 히로시마"라 불릴 정도로 내전때 파괴된 칼로바크 마을을 지나 닿은 플리트비츠 호수국립공원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해발 5백3m 높이에서 6백36m 지점까지 16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계단식으로 잇닿아 있다.

그야말로 산정호수군이다.

92개의 폭포가 물길을 만들고 있다.

맨아래 노바코비차 호수 옆 78m 높이의 플리츠비차 폭포는 경외스럽기 조차 했다.

호수 위로 나무다리를 놓아 물위를 걷는 기분을 맛볼수 있게 만든 감각이 돋보였다.

산책로는 총연장 9km.

호수의 물은 바닥이 보일 정도로 푸르게 투명했다.

이게 물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 속에 유영하는 송어가 행복해 보였다.

지난 79년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공원안내원인 헬레나가 재미있는 얘기를 했다.

호수의 물을 가두고 있는 둑의 암석이 1년에 2~3cm씩 자란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길이 바뀌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지각운동으로 융기하거나 물속에 녹은 석회성분이 차례로 암석에 들러붙는다는 설명쯤으로 이해했다.

어떻게 이 높은 지대에 체인처럼 엮인 호수가 생겼을까.

8번째 호수인 갈로박호를 기점으로 암석의 성분이 다르다고 한다.

윗쪽은 화강암, 아래쪽은 석회암인데 무른 석회암이 주저앉으면서 호수체인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검은 옷의 여신에 대한 구전설화도 전한다.

오토만제국과 싸울때 기근에 시달리던 마을사람을 위해 여신이 비를 기원했고 그 빗물을 맨꼭대기 프로스챈스코(기도하는 사람이란 뜻) 호수에 끌어모아 흘러내리도록 했다는 얘기다.

이 물은 코라나강을 이뤄 폭포와 계곡으로 어울린 기막힌 풍치를 엮어내고 있다.

역광에 검게 탄듯한 낙옆이 쏟아지는 산책로와 호수빛깔이 어울린 11월 플리트비츠의 오후는 서늘하면서도 찬란했다.

호텔지붕 용마루가 주위 나무 보다 높지 않도록 규제하는 등 자연과의 어울림을 우선하는 보호의지가 부러웠다.

아드리아해변의 도시 자다르에까지 플리트비츠 호수국립공원의 투명한 기운이 따라왔다.

그러나 크로아티아의 1천8백km 아드리아해변가 도시들이 그보다 더 환한 빛을 발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