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칭 ''개미군단''이라고 불리는 개인 주식투자자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고 있다.

투자원본의 ''반토막''을 건졌다는 건 ''자랑거리''다.

''깡통계좌'' 정도는 얘깃거리도 아니다.

신용카드 빚을 갚지 못해 ''적색거래자''가 된 직장인이 수두룩하고 자녀의 혼수자금을 까먹은 집도 한둘이 아니다.

집을 날리고 월세방으로 내몰린 경우도 적지 않다.

''가정파탄''까지 생겨날 정도다.

최악의 낙폭을 기록한 18일 거래소와 코스닥시장의 게시판은 이런 개미들의 울화통 터지는 심사를 반영하듯 온통 시퍼렇게 물들었다.

연초대비 지수하락률 ''코스닥세계 1위''''거래소 세계 3위''가 우리 증시의 성적표이니 투자원금의 ''반의 반토막''이라도 남아있으면 다행이다.

IMF(국제통화기금) 사태의 잔영이 채 가시기 전이어서 그 충격은 더하다.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시장의 시가총액 규모를 기준으로 할 때 올들어 개미들이 주식시장에서 날린 돈은 어림잡아 7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거래소의 경우 시가총액이 연초 3백57조원에서 18일에는 2백9조원대로 오그라들었다.

개인투자자들의 주식보유 비중이 4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60조원 가량 날아갔다는 계산이 나온다.

코스닥의 시가총액은 지난 3월10일 90조원(평화은행 우선주등 제외)에서 44조원대로 줄어들었다.

개인투자자들의 보유 비중은 40%안팎이니 개미들이 코스닥시장에서 날린 돈만도 18조원에 달한다.

개미들의 주식투자 토론장인 팍스넷 등 인터넷사이트에는 종목정보에 대한 얘기는 사라졌다.

정부정책에 대한 성토와 속터지는 말로 가득 채워져 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등의 60∼70년대식 선동구호 일색이다.

''hanjintop''이란 ID를 쓰는 투자자는 "투자하는 순간부터 걱정만 늘려놓고 눈깜짝할 사이에 재산의 절반을 먹어삼킨 한국의 객장을 영원히 떠난다"며 울분을 쏟아냈다.

회사원 차모(38)씨는 신용카드 대금청구일인 오는 27일께 적색거래자 명단에 끼이게 됐다.

5천만원을 마련해 주식투자를 시작한 차씨는 원금을 모두 까먹고 현재 빚만 1억5천여만원에 달한다.

이중 신용카드 빚 8천만원은 아예 상환을 포기했다.

친인척들의 보증으로 빌린 돈(7천만원)만은 갚아야겠기에 전세를 빼내 월세로 옮겼지만 절반도 못갚았다.

주식 때문에 친척들과도 ''원수''가 돼버렸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이모(57·여)씨는 요즘 남편과 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작년말 벤처열풍이 한창일 때 ''한몫 잡겠다''며 인터넷업체에 투자한 돈 1억원을 몽땅 날렸기 때문이다.

그 돈은 남편의 퇴직금과 큰 딸의 혼수비용이었다.

이씨는 요즘 "이혼당할까봐 조마조마하다"며 "그저 죽고싶은 심정"이라고 한탄한다.

식당을 하는 송모(42)씨는 주변 사람들이 주식으로 재미를 보았다는 말에 식당 확장 자금을 찔러넣었다가 모두 들어먹었다.

송씨의 부인 한모(40)씨는 "식당을 늘리려고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골라 먹으며 모은 피같은 돈"이라고 울먹였다.

한 투자자는 "물론 투자의 결과는 투자자 책임이라는 것을 안다"며 "하지만 주가가 천정부지로 뛸 때는 ''아직 더 올라야 한다''며 부추기다가 떨어질 땐 투자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정책당국자들을 두들겨 패주고 싶다"고 목청을 높였다.

팍스넷에 글을 올린 한 투자자는 "''객장''을 ''경마장''이나 ''도박장''으로 유도한 정책당국자들을 도박장개설죄로 엄벌해야 한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