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작가 >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른다.

그늘집에만 다다르면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좋아하던 나인데...

그날만큼은 예외였다.

음식을 앞에 두고도 씩씩거리며 입이 한 자나 나와 있었다.

8개월만에 만난 절친한 선배들과의 라운드.

과거의 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뭔가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강해서일까.

"마음"은 간절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초반에는 그런대로 맞는가 싶었는데,점차 특기인 뒤땅 샷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 오르막 파5홀에서는 절정을 이루었다.

"이번 샷에는 실수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굳어질수록 헛스윙과 뒤땅치기가 더해갔다.

타오르는 날씨만큼이나 속도 타올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 그늘집에 다다랐다.

"골프치면서 절대 화내는 동반자가 되지 말자"는 내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잘 하고 싶은 마음과 반대로만 가는 골프가 원망스러웠다.

나온 입은 들어갈 줄 몰랐고 씩씩거리는 숨결은 가라앉을 줄 몰랐다.

그러고 있는 내게 고참 선배가 물었다.

"고영분씨,필드 자주 못나오죠.그리고 연습장도 자주 가지 않죠"

그랬다.

올해들어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연습장도 고작 한 달에 한 두번,그리고 필드 나가는 것도 역시 가뭄에 콩나듯했다.

"그럼 그렇죠.그러니 골프가 이렇게 말하겠어요. "네가 나한테 해준게 뭐야"라고"

요즘 TV광고에서 들었음직한 카피다.

"네가 나한테 해준게 뭐야"

너무도 무관심한 애인 곁을 떠나가면서 내뱉는 최후의 멘트였던가.

얼마 전에 만난 싱글 핸디캐퍼는 그 비결을 묻자 남다른 시절을 이야기했다.

장대비가 쏟아지건,눈발이 휘날리건 기회만 되면 필드로 나갔고,커다란 배추 박스에 볼을 담아 연습하는 것은 물론,그것이라도 거를라치면 틈날 때마다 사무실에서 헛스윙 연습을 했다고 했다.

골프를 잠시도 관심밖으로 놓아둔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100분의1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마음은 늘 싱글 핸디캡만을 바라보는 나.

이상과 현실이 다르니 골프가 "해준게 뭐냐"며 자꾸 뒤돌아 설 수밖에...

방법은 한가지다.

돌아선 애인 달래는 데는 귀찮을 정도의 관심과 애정이 최고의 명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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