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날 해 봐야 벤처밖에 더 됩니까"

홈 네트워킹 솔루션 업체인 P사 K영업부장(37)의 푸념섞인 말이다.

S그룹 종합상사에서 몇년간 근무하다 지난해 벤처로 자리를 옮긴 K부장은 대기업 재직시절엔 느끼지 못했던 설움을 많이 겪는다고 털어놨다.

이름만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던 대기업에서 일하던 때와는 달리,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벤처기업 직원에게는 거래처에서 대하는 태도부터가 다르다는 것.

그는 "대기업 거래처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여야 하는 게 지긋지긋한 일"이라며 "힘 없는 벤처가 어쩌겠습니까"라고 하소연했다.

"벤처기업이 성공하려면 하루빨리 "벤처 딱지"를 떼야 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한국의 벤처는 지금까지 대기업이 건드리지 못했던 부분을 공략해 그 틈바구니에서 성장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벤처산업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네트워크 장비,이동통신용 중계기.단말기,각종 인터넷 솔루션 등의 주요 수요처도 상당부분 대기업이다.

몇몇 선두 벤처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힘 없는" 벤처 입장에서는 K부장처럼 대기업에 머리를 숙이게 마련.

한시바삐 벤처를 졸업하고 대기업과 당당하게 겨루고 싶은 K부장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의 푸념속엔 성공한 벤처기업이 도달해야 할 목표로 기존 한국의 대기업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노파심이 든다.

한 벤처기업 사장은 진짜 벤처인지 아닌지를 가리기 위해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와 "지식"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적용한다.

소수 주주가 회사를 소유하지 않고 전직원이 소유권을 나눠 가져 주인의식을 갖고 스스로를 위해서 일할 때 벤처기업이 된다는 것.

또 기업의 생산요소가 자본이나 노동력이 아닌 지식이어야 참 벤처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텔은 벤처이지만 한국의 대다수 대기업들은 벤처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하던 미운 오리 새끼가 계속 오리를 닮아가려 했다면 훗날 멋진 백조가 되진 못했을 것이다.

벤처는 벤처 나름의 길이 있다.

길을 찾으려면 진정한 벤처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한 자가진단이 필요하다.

자기정립을 통해 벤처만의 경쟁력을 키울 때 대기업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다.

K부장의 입에서 "백날 천날 일해도 영원히 벤처이기를 바란다"는 바람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이방실 벤처중기부 기자 smile@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