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

16대 국회 원구성 협상에 임하는 자민련의 행보를 보면 이런 탄성이 절로 난다.

자민련은 4.13 총선에서 참패했다.

의석이 15대의 55개에서 17개로 줄어 교섭단체도 만들지 못한다.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한 군소정당의 비애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다.

국회 의사당에 있는 총재실과 총무실 등을 모두 비워 주어야 한다.

국회에서 봉급을 주는 1급에서 4급까지 모두 9명의 당 소속 정책전문위원 자리도 없어진다.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도 예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내려간다.

국회 운영과 관련된 여야협상 테이블에 참가할 권리도 원칙적으로는 박탈된다.

한나라당 이부영 총무는 16대 국회 원구성 협상을 하는 자리에서 자민련 오장섭 총무와 함께 사진 찍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군소정당의 설움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정치 9단" 명예총재가 이끄는 자민련은 "교섭단체를 가진 원내 제3당"의 기득권을 지킬 목적으로 갖가지 "꼼수"를 남발하고 있다.

어떤 정당이 선거에서 참패할 경우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원인을 찾아 교정함으로써 당의 진로를 새롭게 열어나가는 것이다.

적어도 이렇게 하는 것이 상식에 맞다.

하지만 자민련에서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지난 4월 중순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강창희 의원은 취임사에서 "내각제, 합당, 선거구 문제 등 수없이 말을 바꾸면서 자기 합리화의 늪에 빠진 것이 패인"이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진단의 타당성 여부가 아니다.

옳든 그르든간에 공당의 사무총장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말이었음에도 김종필 명예총재가 역정을 냈고 이한동 총재도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강 총장을 야단쳤다고 한다.

이것이 문제다.

모두가 게걸음을 하는 곳이라 똑바로 걷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당한 것이다.

선거패배에 대한 진단과 반성을 내놓지 않은 채 분을 삭이고 있던 자민련은 기묘한 "장고 끝의 꼼수"를 선보였다.

교섭단체 기준을 20석에서 15석이나 10석으로 내리자는 것이다.

전체 의석이 26석 줄었으니 그게 맞다고 한다.

그러자 박상천 민주당 총무도 거들고 나섰다.

"원래 10석이었는데 군소정당을 죽일 목적으로 유신체제 때 20석으로 높였다"고 친절하게 그 역사적 배경까지 설명한다.

쯧쯧, 그 이야기를 왜 이제 와서 하나?

선거 전에 진작 하실 일이지.

오장섭 총무와 박상천 총무한테 물어보자.

만약 자민련이 무난히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민국당이 17석을 얻는 선거결과가 나왔더라도 똑같은 주장을 했겠느냐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일국의 집권당과 어제까지의 공동여당 총무들이 이런 "뻔뻔한 반칙"을 시도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16대 국회도 벌써 싹수가 노랗다.

이한동 총재는 "우리가 협조해 주지 않으면 1당이나 2당이나 한 발짝도 못나가고 어떤 중요한 정책과 법안도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오 총무 역시 기회 있을 때마다 똑같은 주장을 되풀이한다.

정말 웃긴다.

겨우 17석밖에 없는 군소정당 주제에 웬 뚱딴지같은 협박?

자민련이 공동여당으로 있던 지난 2년 동안 뭐 그리 잘 된 일이 있었나.

국민들이 양당체제를 만들어준 것은 자민련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는 3당체제에 낙제점을 주고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큰 틀에서 타협해 가면서 잘 해보라고 명령한 것 아닌가.

그런데도 도무지 민의를 읽으려는 자세가 없는 자민련, 교섭단체 요건 완화 요구에 이어 상임위 위원정수 조정 협상에서도 "홀수론"을 고집했다.

자민련 당선자는 모두 17명.

김종필 명예총재를 빼면 16개 상임위에 하나씩 들어가면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모든 상임위를 홀수로 구성하면 자민련은 모든 곳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다.

아무리 이기적 인간들이 하는 일이라지만 총선에서 드러난 유권자의 뜻을 손톱만큼이라도 존중하는 정당이라면 이렇게 까지 할 수야 없을 것이다.

교섭단체 기준 완화와 "홀수론"을 욕하자는게 아니다.

무슨 짓을 하든 최소한 앞뒤는 맞게 하라는 이야기다.

시사평론가/성공회대 겸임교수 denkmal@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