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공사 직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아마도 무임승차일 것이다.

어떤 대책을 세워도 무임승차는 사라지지 않는다.

공짜를 바라는 심리가 인간의 본성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탓이다.

무임승차로 인해 발생하는 지하철 공사의 손실은 요금 인상이나 세금 인상
등의 형태로 결국 선량한 시민들에게 전가된다.

보다 못한 시민들이 "무임승차 추방 시민연대"라는 단체를 만들어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단체가 유인물을 돌리고 스티커를 만들어 붙이고 신문에 광고를 내고
역 지하도에서 무임승차 추방을 위한 거리 콘서트라도 여는 경우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누가 이 비용을 부담해야 할까.

우선 이 단체 회원들이 회비를 내고 평소 얌체짓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던
승객들이 후원금을 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무임승차 현상은 이 운동조차도 어렵게 만든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이 캠페인이 성공하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자기가 그 비용을 내는 데는 소극적이다.

무임승차 추방운동에도 무임승차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하철 공사와 서울시가 활동자금을 지원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이 단체가 "순수"하지 못하다고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가운데 무임승차 전력이 있는 후보가
있다고 하고, "무임승차 추방 시민연대"가 이를 문제삼아 그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을 시작했다고 하자.

문제의 후보는 음모론으로 낙선운동을 공격한다.

"시민단체가 서울시와 유착해서 나를 낙선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이 단체가 서울시의 재정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이게 과연 말이 될까.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비난은 이것과
똑같은 논리에 입각한 것이다.

행정자치부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1999년 정부에서 사업비를 지원받은
민간단체는 모두 1백23개, 지원총액은 1백50억원이었다.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17억5천만원), 자유총연맹(8억1천만원), 바르게살기
운동중앙협의회(5억2천만원) 등 "관변단체"들이 제일 큰 뭉칫돈을 받았다.

공익적 시민단체로서 최초의 공천반대자 명단을 발표한 경실련은
1억3천만원을, 총선시민연대의 주축인 환경운동연합은 1억1천만원을 받았고,
참여연대는 지원 신청을 아예 하지 않았다.

나머지 단체들은 대부분 1천-5천만원 수준의 사업비를 보조받았는데, 이는
경상운영비가 아니라 특정한 민관협동 프로젝트를 근거로 한 사업별 예산으로
쓰였다.

게다가 이러한 재정지원은 한나라당이 집권하고 있던 97년 이전에도 있던
제도다.

1백23개 비영리민간단체의 면면을 보면 몇몇 관변단체를 빼고는 거의 모두가
환경단체, 여성단체, 소비자단체, 장애인지원단체, 문화단체, 자원봉사단체,
주민자치운동단체들이다.

이런 단체들은 "무임승차 추방운동"과 마찬가지로, 국민들이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돈을 내려고 하지는 않는 공익적 분야에서 활동한다.

정부가 사업비를 지원하는 것은 이 단체들이 시장에 맡겨두면 외부효과
때문에 과소공급되기 마련인 공공재 공급을 확대한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명백히 합헌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이다.

이런 것을 "증거"라고 우기는 걸 보면 음모론의 근거는 확실히 허약하다.

깨놓고 말하건대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국가의 보조금을 받아도
좋을 만큼 공익적인 운동이다.

"깨끗한 정치"나 "수준 높은 정치"는 국민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공공재다.

여야 정당들은 연간 수백 억 원의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받으면서도 이것을
공급하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도 사과는 커녕 "불순"과 "음모" 타령으로 받아치고 있으니, 이
염치없는 적반하장을 어찌해야 좋을꼬.

< 시사평론가/성공회대 겸임교수 denkmal@hitel.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