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JP) 총리는 "선문답"을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 정치적 경륜에다 풍부한 행정경험,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박학다식함
등을 겸비해 그의 말 한마디는 언제나 세간의 화제가 된다.

그러나 최근 내각제 개헌유보 발언 이후 JP의 언행은 정치9단으로서의
관록이 무색할 정도로 옹색하기 그지없다.

20일 "DJ와 JP가 신당을 창당키로 지난 주말인 17일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가자 청와대와 총리실, 자민련이 발칵 뒤집혔다.

진위파악이 어려워 한바탕 난리를 친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JP 한사람뿐이었다.

JP는 이날 이렇게 말했다.

"(언론보도는) 완전 오보다. 나는 17일에 골프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고
심지어 사실확인을 위해 들어간 총리실 관계자들을 면박까지 줬다고 한다.

그러나 JP가 이처럼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순간 자민련 박태준 총재는 "두
분이 17일 회동한 사실을 19일 저녁에 알았다"며 "무한대의 정계대개편이
8월내에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청와대측에서도 두 사람이 청와대에서 만난 사실은 없지만 시내에서 만난
사실은 부인하지 않았다.

이런 발언이 나온 뒤 재차 확인을 요구받은 JP는 측근에게 "청와대에서
오찬을 한 사실이 없다"고만 기자들에게 말하라고 했다.

다른 데에는 만났지만 청와대에서는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의 "말장난"에 가까운 표현이다.

JP는 지난 14일 내각제 연내 개헌 유보 보도에 대해서도 "포기니 연기니
하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으나 자민련 강창희 총무는 "JP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생각해야 되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며 JP의 말을 뒤집었다.

그러자 JP는 다음날 기자들을 만나 "측근들끼리 이런 저런 얘기는 했다"고
한발 물러섰다.

JP는 또 "내각제 문제는 당과 당에서 논의할 것이고 밀실합의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과정을 보면 이 말의 신빙성도 사라져버렸다.

당과 당 사이의 논의는 이미 DJ와 JP가 합의한 것을 가지고 모양새만
갖춰나가는 양상이다.

당내외 많은 사람들은 두 사람이 내각제 약속 합의를 깼다는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당쪽에다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의원들 국민들 모두가 JP의 "핫바지"가 돼가고 있는 형국이다.

< 한은구 정치부 기자 to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