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외환위기 수습과정에서 재정경제부 관료들과 자주 접한 한 국제
금융계 인사는 한국의 관료들은 "인도어 프로(Indoor pro)"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골프에 비유해 "실내 연습장에선 강한데 정작 필드에선 형편없다"는 지적
이었다.

관료조직 내에선 최고의 엘리트일지 모르지만 국제경쟁력이란 측면에선
역부족인 점을 꼬집은 것이다.

실제 한국의 관료조직엔 엘리트가 많이 들어간다.

명문대를 나와 행시를 패스한 우수한 인재들이 많다.

경제부처의 경우 박사들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이런 인재들이 모인 관료집단의 경쟁력은 결코 높지 않다.

스위스의 국제경영연구원이 매년 발표하는 각국의 정부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늘 하위권이다.

한국의 전체 국가경쟁력(98년기준 35위)을 떨어뜨리는 주 요인도 정부부문
이다.

개개인은 똑똑한 데 그들이 모인 관료집단은 그게 아니란 얘기다.

이유는 간단하다.

관료조직 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2차 정부조직개편의 큰 비중을 정부 운영시스템의 개선에 두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게다.

정부는 이번 개편을 통해 "국민에게 봉사하는 효율적인 정부를 설계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사실 이를 위해선 관료조직에서 바뀌어야 할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비효율적 관행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

대표적인게 아웃 풋(Output.산출결과)이 아니라 인 풋(Input.투입량)
위주로 일하는 폐습이다.

세계은행(IBRD)에 오랫동안 몸담다가 작년말부터 재경부장관 자문관으로
일하고 있는 전광우 박사는 "야근을 밥 먹듯하고 휴일에도 못쉬는 재경부
직원들을 보면 안쓰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재경부의 한 과장은 "작년 1년동안 제대로 쉰 날이 3-4일도 안된다"
고 푸념한다.

일하는 시간으로만 따지면 아마 한국관료는 세계 1위일지 모른다.

그러나 일의 효율성을 보면 "글쎄..."이다.

재경부엔 올초부터 모든 서류를 전자결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깔렸다.

하지만 지금 컴퓨터로 전자결재를 하는 국.과장은 거의 없다.

일요일에 장.차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한나절을 사무실에서 기다리는 시간
낭비도 그렇다.

이런 관료주의적 관행이 고쳐지지 않는 한 한국의 관료들은 앞으로도 쉴 수
없을 것이다.

관료들의 폐쇄성도 마찬가지다.

흔히 관료들은 "정보=파워(Power)"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렇다.

문제는 그 파워를 지키기 위해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려는 속성이다.

"부처간에 마찰이 빚어지는 발단은 상당부분 자료나 정보를 제대로 제공
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산업자원부 P과장).

심지어 한 부처의 국간, 같은 국의 과 사이에도 핵심 정보나 자료는 나눠
보기를 꺼리는 사람이 많다는게 관료들의 자평이다.

하물며 민간에 대한 정보제공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한국관료들에게 스티글리츠 IBRD 부총재는 지난달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국제회의"에서 "정부의 정보는 관료들의 것이 아니라 세금을 낸
국민들의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물론 관료들 스스로도 변화의 필요성을 못느끼는 것은 아니다.

재경부의 한 국장은 "이제 관료가 할 일은 정책이 아니라 전략"이라고
말했다.

정보화 개방화 시대에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정책을 수립해 하달하는 식으론
안된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 확대시행이 물의를 빚은 것도 그런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앞으론 정책수립 전에 관계자들의 이해를 조정하고 부작용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전략을 짜는게 중요하다"며 "이렇게 바뀐 환경속에서
관료들이 살아 남으려면 민간 못지 않은 시스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낡은 시스템과 인식을 벗어던지지 않고는 한국의 관료들은 영원히
"인도어 프로"에 머물 것이란 얘기다.

< 차병석 기자 chab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