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투신사가 누가 더 부실한지를 따지며 뭉칫돈뺏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연일 거액이 투신사로 빠져나가는 것을 참다못한 은행들이 당국의 힘을
빌려 돈줄을 죄자 투신사들은 증권사와 한 편이 돼 은행과 금융당국을
거칠게 공격하고 있다.

발단은 증권감독원 김기영 경영지도국장이 지난 11일 대우 LG 현대 삼성
등 4개대형증권사 관계자들에게 지시한 "수익증권 광고금지".

증권사들은 즉각 지나친 간섭이라며 노골적으로 금융감독위원회와 은행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광고에 대해 제재조치를 내린 적은 있지만
정상광고에 대해 금융당국이 게재금지를 지시한 것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한 증권사 임원은 "IMF체제이후 투자자들은 은행보다 일부 증권사들의
신용도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안정성을 찾아 자금을 옮기는
현상을 금감위가 막겠다고 하는 것은 자율금융이라는 시대조류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정치권과 금융감독위원회를 상대로 로비를
한 것으로 안다"며 "금감위가 은행 증권 보험 종금 신용금고등 전 금융권을
망라하는 감독기구가 된만큼 특정 금융권을 편들어주는 행위는 근절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은행권의 반격도 만만찮다.

은행 관계자는 "부실의 대명사가 투신이 아니냐"며 "투신사나 증권사들이
안전성 운운하는 것은 한마디로 속임수"라고 말했다.

로비설도 과장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고객들이 투신사의 부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점을 증권.투신
업계가 악용해 뭉칫돈을 유혹하고 있다는 점을 금융당국에 이해시키려
한 것뿐이라는 얘기다.

은행들은 투신사가 구조조정의 "사각지대"나 "안전지대"가 결코 아닌데도
고객들에게 가장 안전한 금융기관이라며 "과장광고"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관계자는 "은행퇴출과정에서 은행신탁상품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등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투신권이 은행보다 나을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단기자금이 너무 몰리면 나중에 유동성위기에 몰릴 수
있다"며 "증권.투신업계 스스로를 위해서도 지나친 단기자금유입은 막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양측간 싸움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자 금감위는 슬쩍
발을 빼기 시작했다.

김 국장은 "대형증권사들이 단기자금 유치경쟁을 벌여 자제를 요청하려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도 "금융기관이나 고객 모두가 이제 스스로 책임을 지는
시대라는 점을 깨닫고 균형감각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전문가들은 신탁부문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은행신탁이든 투신이든 어느쪽도 온전하지 않다는 게 이들은 진단이다.

한편 지난7월1일 이후 증권사와 투신사의 수익증권 판매고는 30조원
정도가 늘었다.

최근엔 하루 1조원정도가 늘어나는등 갈수록 증가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11일현재 투신사들의 수익증권판매잔고는 모두 1백41조3천6백49억원에
달한다.

이중 공사채형 수익증권이 1백32조7천9백68억원 주식형 수익증권이
8조5천6백81억원을 각각 나타내고 있다.

반면 은행 신탁계정은 급격한 감소추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은행신탁은 지난 7월 6조1천5백29억원에 이어 이달들어 8일까지
1조2천7백24억원이 빠져나갔다.

< 허귀식 기자 window@ 박준동 기자 jdpowe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