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동안 기업공개를 위해 준비작업을 해왔습니다. 기관투자가들이 외면
하니 3년 고생이 수포로 돌아간 셈입니다"

지난 6일 기관투자가들의 냉담한 반응으로 기업공개를 포기하게 된 S사
실무담당자는 넋을 잃은 듯 투신 은행 등 기관들이 이 회사주식을 거의
사지 않겠다니 그럴만도 했다.

증권거래소에 상장하기 위해 공개를 준비한 회사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이다.

더욱이 12월말 결산작업이 진행되므로 내년쯤 가야 다시 기업공개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간사측의 설명은 더욱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요즘처럼 채권발행이나 유상증자를 통해 직접금융조달이 거의 마비된
상태에서 기업공개를 통한 자금조달마저 봉쇄되고 만셈이다.

지금까지 기업공개를 하려다 철회한 회사는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기관투자가를 상대로한 사전 수요예측이 실패해 공개를
철회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한마디로 기업공개에 대해 기관들이 뒷짐을 지고 있으니 상장을 희망하는
기업은 3년노력이 도로아미타불이 된 것이다.

물론 기관투자가들도 저마다 사정은 있다.

지난해 연말 엄청난 평가손을 현실화시키면서 주식을 처분해 왔다.

은행이나 증권사는 주식이 위험자산으로 분류돼 재무건전성 차원에서도
추가매수를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게다가 주가전망은 당분간 좋지 못하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기관투자가의 본래 임무는 계속돼야 한다.

장기투자로 고객에게 투자수익을 내주고 증시에는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

IMF한파로 얼어붙은 주가를 살려내기 위해 기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그래야 기업의 자금조달원으로서, 건전한 투자자의 투자처로서 주식시장이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기관투자가가 뒷짐을 지고 있는한 주식시장은 붕괴될 수 밖에 없고 증시가
없는한 기관투자가의 존재는 의미가 없다.

최명수 < 증권부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