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6년 일본 도시바그룹은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은적이 있다.

COCOM(대공산권수출금지품목)리스트에 올라있는 제품을 수출하다가 덜미를
잡혀 미국 등에게 보복을 당한 것.

잠수함용 스크류 가공기계가 코콤리스트에 오른 것을 모르고 동구권국가에
수출한게 화근이었다.

영업부서에서 일일이 리스트를 챙겼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도시바는 이 사건으로 대미수출중단 등 많은 수험료를 치렀지만 "전략법무"
라는 새 경영체계를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전략법무란 조직전체의 법적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예방 관리하는 시스템.

이를위해 법무팀이 조사, 위험예방 프로그램개발, 법개정 등에 두루 참여
한다.

쉽게 얘기하면 기획과 법무 감사업무 등을 어우르는 스탭중의 스탭인
셈이다.

소송의 뒤치닥거리를 하거나 계약서를 검토하던 종전의 업무스타일과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기업법무팀은 꼼꼼하게 회사일을 챙길 수 있는 전문부서의 중요성이 부각
되면서 그 위상이 높아졌다.

영업따로 법무따로식의 부서이기주의는 회사에 백해무익하다는 경험도
작용했다.

이는 "안면장사"의 동양적 관행보다는 서류로 모든 걸 처리하는 서양식
거래가 보편화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경없는 경제전쟁의 시대엔 상과 법이 따로따로 놀아선 안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는 증거이다.

일본 소니사는 중역회의에 반드시이사급의 법무실장을 참석시킨다.

시장침투나 이익방어 모두에 법이 필요해서다.

국내 기업 처음으로 지난 78년 출범한 대한항공 법무실의 경우 신규취항지
선정때부터 깊숙히 발을 들여놓는다.

국제항공부문은 국제법과 취항지의 국내법 등을 검토하는게 시장노크를
위한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매년 직원들을 미 텍사스주 댈라스소재 SMU(남부침례교대학)주관의 항공법
심포지움에 참석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81년 조직을 출범시킨 삼성물산 법무팀이 프로젝트지원과 지적재산권
업무에 포커스를 맞춰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의 법무조직은 아직 선진국수준에는 멀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1인당 생산성이 가장 높은 곳"이란 소릴 듣고 있는 곳이 있는가하면
조직내 다른 파트와 호흡을 맞추지 못하고 독야청청하는 곳도 있다.

허재관 능률협회전문위원은 "전략법무의 역할을 증대하기 위해선 법대출신
외에도 경영학과출신 등 타부서 경험자도 함께 근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지 법률전문가로서 안주시키지 않기위해선 이들에게도 똑같은
승진기회를 안겨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언한다.

선진화된 법률문화의 표본을 보여주는 미국의 경우 그룹법무실은 하나의
계열사다.

시어스로벅 백화점에 6백50여명의 변호사가 활동중인 것을 비롯 IBM 5백명,
ATNT 4백85명, GM 3백30명 등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 인하우스 로이어가 계약서를 작성하는 건 당연하다.

일본계 기업의 법무팀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걷는다.

김종복 대한항공법무실장은 "어느게 좋다고 말할게 아니라 예방법무수준을
빨리 넘어서는 게 중요하다"며 "국제사회의 빠른 변화를 따라 잡을 수 있는
교육과 인재의 조직내 융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제부터는 단순한 덩치 키우기보다는 집약화가 우리나라 기업 법무팀의
숙제다.

< 남궁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