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부도위기에 처해 사실상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법정관리"
를 받게 되자 경영계는 물론 노동계도 위기감에 휩싸이고 있다.

노동법파동으로 홍역을 치른지 1년만에 노동계는 대량실업이라는 생존권
문제로 불안감에 떨고 있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IMF 요구사항들이 궁극적으로 노사문제로 귀결된다고
보고 있다.

구조조정과 재정긴축은 한계기업 도산 및 대량실업으로 이어져 고통분담문제
를 놓고 노사가 힘겨루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것이다.

정부가 재정을 긴축하고 기업이 투자를 줄이면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성장률
이 떨어지면 고용감소가 초래될 것은 뻔하다.

기업이 대대적 구조조정을 단행하면 수많은 근로자들이 일터를 떠나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민간경제연구소들은 내년에는 실업자수가 현재의 2배 수준인 1백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댓가가 큰 만큼 저항도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의 속도와 폭, 각자 분담해야 하는 희생의 크기를 놓고
노와 사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경영계는 기업을 살리려면 근로자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벌써 실근로시간을 단축해 실질임금을 줄이자는 얘기, 근로기준법을 없애고
근로계약법을 만들자는 얘기,노동시장을 좀더 유연화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노동계는 실질임금 감소를 거부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책임을 오로지 근로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얘기다.

강제적 고용조정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노사간의 견해차는 금융산업 구조조정 때부터 장애물로 등장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부실금융기관들을 정리하다 보면 금융산업
종사자 30만명 가운데 10만명이상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같은 "대수술"은 금융산업 근로자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그렇다고 수술을 기피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최악의 경우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지고 한계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져
끝내 국가경제가 붕괴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물론 수술의 고통은 금융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산업, 대부분 사업장에서 고용조정 때문에 노사가 한차례 부딪치지
않을 수 없는게 현실이다.

이 대립을 얼마나 슬기롭게 넘기느냐가 경제위기 극복의 관건인 셈이다.

최근 노동부와 사회 일각에서 고용조정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거론하고 있다.

노동부가 검토하고 있는 방안은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키로 약속한뒤
충돌없이 구조조정을 단행하자는 것이다.

근로자는 임금안정, 사용자는 고용안정,정부는 경제안정을 위해 3자가
합의한 수준에서 희생을 분담하자는 얘기다.

문제는 경제주체들이 일시적 고통을 감수하겠다고 결단을 내리느냐 여부
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어수봉 연구위원은 우리 경제가 노동법파동과 같은 극한
대립을 이제는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조정의 속도와 폭에 대해 사회적 합의 또는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합의를 토대로 노사가 견딜만한 수준에서 효율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
해야 한다는 것이다.

< 김광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