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 관련 법안들은 결국 만신창이로 결론이 났다.

금융개혁 법률안들이 국회에서의 정당간 대립, 한국은행과 증권감독원 등
감독기구들의 반발등으로 만신창이가 되는 가운데 금융시장은 환율급등
금리폭등 주가폭락의 악순환이 재개되는등 악화일로에 있다.

특히 17일에는 환율이 상한가를 기록한 가운데 그동안 표면적인 안정세를
찾아가던 주가마저 폭락세를 보여 치솟는 금리와 함께 총체적인 경제위기감
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연말 대선과 맞물려 정부기능과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마비
상태에 들어설 가능성마저 있는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당장 외환시장과 증권시장에 주는 충격파가 우려되고 5백억달러규모의
IMF 구제금융 신청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시장의 불안이 이처럼 장기화되고 있는 것은 정부의 경제및 금융시장
관리능력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들끓고 있다.

특히 금융개혁법안을 둘러싼 갈등양상이 곧바로 금융불안으로 다시 증폭
되고 있는 것은 강경식 부총리겸 재경원 장관등 고위당국자들이 한은법
개정안 등을 금융시장 안정대책에 연계시키는 무책임한 전략을 채택한 데도
한원인이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은법 등은 그자체로 논란거리가 많은 법률안인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자신이 마련한 개정안이 지상선인 것으로 가정한 다음 이것이 실패할 경우
금융불안이 재연될 것처럼 과잉된 홍보를 하는 바람에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한은법이나 통합감독기구 설치법은 당장의 금융시장 대책과는
무관한 장기과제라고 지적하고 정부가 굳이 이를 연계시킨 것은 위기관리
책임을 국회등에 떠넘기려는 전략이거나 재경원의 시장대책이 한계에 왔음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정부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장은 "최근 정부가 금융개혁법을 지상과제인 것처럼
홍보하는데 놀랐다"고 밝히고 "특히나 외국언론에 대해서 이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한국의 금융위기가 확대재생산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이해할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최근 강부총리와 호흡을 맞추어 왔던 모고위 인사는 "자신이 말해도 듣지
않는다. 은행장들이라도 직접 부총리에게 만나 말좀 해 달라"는 등의 부탁을
하는등 강경식 부총리에 대한 불신도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정부가 난국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거창한 구호와
급진적 상상력을 버리고 현실에 입각한 수습책을 추진해줄 것을 요망하고
있다.

정부의 비현실적인 강경책과 지나친 과욕이 금융불안을 부채질하는 것은
물론 개혁을 위한 환경개선도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4월의 부도협약 이후 기아해법, 증권대책 등 최근까지 정부가 취해
왔던 일련의 급진적 구조개혁 방안들이 금융시장의 불안을 오히려 증폭시켜
왔던 만큼 지금이라도 정부는 귀를 크게 열고 대안을 경청해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계에서는 IMF 구제금융 신청이나 부실기구 통폐합 등 단발성 대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으로서는 정부가 잃어버린 신뢰부터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하고 정부의 자세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