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공식화하고 나선 것은 더이상 미룰 명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 북한이 처한 위기상황을 극복할 만한 묘책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에서 어느정도 벗어난뒤
권력승계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해왔다.

그러나 식량난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다 미국과의 관계개선도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더이상 권력승계를 미룰 명분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때문에 북한이 현재와 같은 비정상적인 국가운영체제로는 현실타개가
어렵다고 보고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체제를 갖추기 위해 권력승계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권력승계 움직임이 공식화됨에 따라 권력승계를 계기로 북한의
대내외 정책의 변화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로선 북한이 권력승계절차를 마무리하더라도 남북관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정일이 김일성의 3년상이 지나도록 승계를 미뤄왔지만 그동안 북한체제를
실질적으로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김정일이 총비서에 취임하면 대내적으로는 군부와의 밀착을
통해 주민통제를 계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계속되는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인해 주민들의 동요가 계속되고 있고 탈북
행렬이 급증함에 따라 체제불안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북한권력 내부에 대대적인 인사개편과 세대교체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특히 지난 3년간 최광 등 혁명1세대의 자연사 등으로 빈 자리를
거의 채우지 않았고 지병과 고령으로 활동이 부진한 인사들도 상당수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김정일이 지난 3년간 펴온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매달리면서도 남한과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통미봉남정책"을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따라서 북한은 정권의 안정화에 주력하는 동안에는 정치.군사적 대남적
대정책을 계속 유지하며 미.일과의 관계개선, 한국 민간기업과의 선별적
교류협력을 통해 실리를 추구하는 정책을 펼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함께 남북대화 재개시기도 대미 관계개선 속도나 식량지원 등 실리
획득 가능성, 한국의 정치상황 등을 고려해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정일이 총비서에 취임하는 대로 경제난 타개 등을 위해 4자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남북정상회담 등을 제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시기상으로 한국에 새정부가 들어서는 내년초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 이건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