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리스트에 연루된 여야정치인들이 검찰에 줄줄이 소환되면서 정치권은
이른바 "소환정국"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 와중에서 정치권과 검찰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여권내에서는
핵심세력인 민주계가 반발하는 등 정국은 혼미스런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민주계 일각에서는 정치인 소환이 김현철씨를 살리기 의한 "수사초점
흐리기"라며 음모설을 주장, 이에 대한 김영삼 대통령의 반응과 의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대통령은 아직까지 검찰수사에 대해 전혀 얘기
를 하지 않고 있으며 정치권의 반발등에 대해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계의 이같은 행동이 과거에 일어났다면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고 보면 김대통령의 이같은 침묵은 현재 처한 어려운 입장을 대변
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4일 "검찰의 정치인 소환이 현철씨문제를 물타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말이 안된다"며 "현재 소환되는 정치인들은 한보청문회를
계기로 "정태수 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거론돼 소환되는 것 아니냐"며
그같은 주장을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정태수 리스트에 거론돼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조사를
받는다는게 정치인으로서는 참으로 아픈 일"이라며 "그러나 현 상황에서
사실확인을 하지 않고 넘어갈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김대통령과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의 지난 12일 회동에
대해서도 "이대표로서는 술렁거리는 당의 분위기를 당총재에게 전달할
필요성이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한마디로 "소환정국"에 임하는 청와대의 공식입장은 검찰의 진실규명수사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철씨의 경우 검찰조사와 한보청문회 결과에 따라 "법대로" 처리하고,
소환된 정치인들은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고 관련정치인들에게 소명의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 전원소환조사가 불가피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청와대측은 음모설을 주장하는 일부 민주계 인사들에 대해 이같은 입장을
설명하면서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대통령은 14일 오후 청와대에서 민주계 중진인 서석재의원과 만나 검찰
수사는 한보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것일 뿐 정치적 의도나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외압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검찰수사에 대해 언급
하기를 꺼리고 있다.

그러나 도대체 어느선까지 가야 국민들의 의혹을 해소하고 민심을 수습할수
있느냐는 점에 대해 고심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소환정치인들중 일부를 사법처리하고 현철씨를 사법처리하지 않을 경우
국민들이 과연 수긍할수 있겠느냐는 점과 현철씨를 사법처리할 경우 김대통령
에게 또 화살이 돌아오지 않겠느냐는 점 등이 해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 최완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