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한보사태 삼미부도등으로 기업경영여건이
갈수록 어려워지자 주요 그룹 총수들이 사업장에서 직원들과 숙식을
함께 하는가 하면 항공기 좌석등급을 낮추는 등 근검절약생활을 앞장서
실천하고 있다.

정세영 현대자동차명예회장은 이달초 유럽 출장때 1등석이 아닌 2등석에
탑승했다.

2세들인 정몽구 그룹회장과 정몽헌 부회장은 정명예회장의 출장이후
해외출장이 없었으나 유교적 가풍으로 미뤄볼 때 숙부가 몸소 내핍을
솔선한 만큼 2등석 탑승의 선례를 따를 가능성이 큰 것으로 그룹
관계자들은 보고있다.

하루 2갑의 담배를 피워 "체인스모커"로 유명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즐기던 담배를 최근 끊었다.

"시간없는 사업가가 골프칠 시간이 있느냐"며 골프에 일절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김회장은 또 다림질을 하도 많이해 번들거리는 양복이나 꿰맨
자국이 있는 와이셔츠를 입으면서 근거절약을 솔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아그룹 김선홍 회장은 최근에야 개인소유 자동차를 프라이드에서
크레도스로 바꿨다.

업무를 제외한 개인용으로 10년째 프라이드를 몰아온 김회장은 회사
전체가 크레도스 판촉활동에 나서자 할수 없이 차를 바꿨으나 프라이드
핸들을 놓은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김회장은 이발은 반드시 회사 구내이발관에서 하며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점심도 꼭 구내식당을 이용한다.

쌍용그룹 김석준 회장은 쌍용자동차 정상화작업 등에 골몰하느라
요즘들어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집무실에서 5천~6천원짜리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운다.

회장 취임이후 골프를 전혀 치지 않고 있는 김회장은 수많은 해외
출장에도 단 한시간도 관광에 할애하지 않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라그룹 정몽원 회장은 이달부터 "한달중 절반을 지방사업장에
머물면서 현장 경영을 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20평 안팎 규모인
사원아파트에서 숙박하면서 구내식당에서 세끼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정회장은 또 한번 산 양복을 상당히 오래 입어 젊은 나이에도 유행이
지난 옷을 입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은 지난해 10월부터 매월 둘째주 목요일 낮
11시30분부터 월례 본부장 회의를 주재하면서 햄버거 한개와 콜라
한잔으로 점심식사를 대신하고 있다.

신세대 음식을 먹으면서 유연한 사고를 하라는 배려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불황을 맞아 그룹 최고경영진이 근검절약을 실천하자는 뜻도
담겨 있다는게 그룹측의 설명이다.

김회장은 사세가 커지는데도 다른 그룹처럼 비서실을 만들지 않고
여비서 1명의 도움만을 받고 있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회장 취임 직후부터 회장실에 딸린 응접실을
바이어를 비롯한 손님 접대용으로 쓰도록 사장단들에게 개방하고 있으며
그룹 헬기도 회장 개인소유가 아니니 필요할 때 적극 활용하라고 지시,
최근에는 외국바이어를 지방사업장으로 안내할 때 일반 임원들도 자주
이용하고 있다.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행사때나 외부행사에
참석할 때를 제외하고는 늘 구내식당 식단으로 식사를 하며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다 구멍난 양말이 눈에 띄는 바람에 본인과 회의 참석자들이
몹시 민망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김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