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와 삼미.

이들 두그룹은 닮은 점이 많다.

모두 30대 재벌이지만 빚을 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 덜미가 잡혔다.

대출에서 부도에 이르는 과정에 외부 입김이 "세게" 작용했다는 논란을
빚는 점도 닮은 꼴이다.

그러나 부도 이후 증시와 경제에 미치는 사뭇 다르다.

한보 부도때 시중실세금리의 대표격인 회사채 수익률(3년만기)은 안정기조를
유지했다.

부도 당일엔 연12.02%로 오히려 전날보다 0.03%포인트나 떨어졌으며 11.9%
(2월11일)까지 하락했다.

외국인들도 별다른 동요을 보이지 않아 부도당일 40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이에 힘입어 종합주가지수는 부도후 이틀간 소폭 상승한 것을 비롯,
오름세를 유지해 2월15일에는 연중 최고치(722.32)를 기록했다.

"역 한보장세"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삼미 부도후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회사채 수익률은 부도이후 오름세를 지속, 연중최고치(12.88%)는 물론
1년6개월여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 있다.

종합주가지수도 3일째 하락하며 620대로 주저앉았다.

한보 부도와 삼미 부도가 이처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정부의
대응방식이 1백80도 달라진데 따른 것이다.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은 한보 부도때 5조원을 푸는 "물량떼기"로 진화
작업에 나섰다.

시중에 자금이 넘쳐 흘러 금리도 안정되고 고객예탁금이 3조원을 넘어서며
단기금융장세가 펼쳐졌다.

그러나 삼미 부도이후엔 전혀 딴판이다.

부도 이튿날에 발표된 "경제살리기 대책"엔 삼미와 관련된 구체적인 언급이
거의 없었다.

협력기업의 연쇄부도를 막기 위해 돈 얼마를 풀겠다는 판에 짜여진 립서비스
조차 제시되지 않았다.

오히려 "부도날 기업이 더 있다"(정지태 상업은행장)는 말에 "부실기업정리
에 정부가 나서지 않겠다"(김인호 청와대 수석)는 맞장구가 나오고 있는 실정
이다.

자금사정이 나쁘다는 루머가 나돈 기업들이 삼미부도후 연일 하한가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게다가 그린스펀 미국 연준리(FRB) 의장의 금리인상 시사발언이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

미국금리가 오르면 국제투자자금이 미국으로 몰려들고 달러강세를 강화시킬
것이며 이는 원화환율 상승으로 이어진다.

환율이 오르면 한은의 시장개입으로 금리는 더 오르고 외국인 매도를 자극할
우려가 높아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620선에서 지지선을 만들지 못할 경우 600도 안전선이
아니다"(이승용 동원증권 투자분석부장)라는 비관론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정치권의 세력균형이 무너지면서 보이지 않는 손이 없어짐에 따라 부도가
늘 것으로 예상돼 증시는 향후 6개월동안 약세를 지속할 것"(이남우
동방페레그린 이사)이란 분석도 나온다.

"은행 증권 건설 등 지수하락을 이끌었던 주식들이 너무 떨어져 다음주부터
반등 계기가 마련될 것"(정종렬 신영투신 사장)이라는 희망론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 홍찬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