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특혜비리 사건 첫 공판에서부터 검찰의 기소당시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이 밝혀지는 등 한보의 외압실체를 둘러싼 논쟁이 법정에서 재현되고
있다.

17일 열린 공판에서는 우선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온 청와대 경제관료의
대출압력이 실제로 존재했음이 드러났다.

홍인길 피고인은 이날 검찰 직접신문에서 한이헌 이석채 전청와대 경제
수석을 통해 한보철강에 대출압력을 행사해 달라고 청탁했다고 진술했다.

한.이 전수석이 시중은행에 압력을 행사해 대출이 이뤄진 금액은 모두
6천9백억원.

결국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은행대출의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검찰은 이와관련, 이들이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한 사법처리가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이부문에 대해 보다 명확히 규명되고 또 관련자에
대한 처리도 단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다음으로는 정태수 총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이 과연 여야의원
4명밖에 없는가 하는 부분.

이날 정피고인은 한보그룹에 대한 국정감사 무마명목으로 권노갑의원에게
1억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자료제출을 요구한 국회의원 4명을 국민회의
4인방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또 권의원에게 1억원을 정재철의원을 통해 건네준 이후 국감과정에서
질의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정총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권의원의 뇌물죄 입증을 위해서는 국감을 전후로 한 권의원의 행적과 이들
4인방의 실체에 대한 규명이 불가피하다.

또 정총회장이 이들 4명에 대해 개별적으로 로비를 벌였는지 여부도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이외에도 정총회장이 조성한 2백80억여원의 비자금중 아직 사용처가
밝혀지지 않은 2백50억여원의 행방도 어느정도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최병국 중수부장은 이와관련, "보강수사를 통해 돈이 건네진 일자와 장소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했으며 공판과정에서 확인된 새로운 내용이
나올 것"이라고 말해 자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사업성이 검증되지 않았고 자기자본이 극히 취약한 한보철강의
제철소 사업지원과 5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은행대출이 이뤄진 경위에 대한
해명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재판은 검찰이 공소제기한 부분에만 국한시켜 사실관계를 따지기 때문에
수사과정에서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변호인들도 사실 관계를 다루기 보다는 피고인들이 받은 돈이 대가성이
있는 명백한 뇌물이 아니라 의례적인 떡값이거나 관행으로 있어온
인사치례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점을 집중 부각, 형량을 낮추는데 주력한다는
전략이다.

이날 공판에서는 또 자신을 깃털에 불과하다고 말한 홍피고인도 "일부에서
자신을 현정권의 핵심이라고 말해 자신을 낮춰부르기 위한 의도였을뿐
한보대출과 관련해 다른 배후세력이 있다는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성 진술을 했다.

그러나 이번 공판이 검찰이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국정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 방침을 밝힌 시점에 시작되었고 한보의 핵심배후로 민주계
실세와 현철씨가 공공연하게 지목되어온 것에 비춰 재판에서 밝혀진 사실이
현철씨에 대한 수사에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한보사건의 최종 마무리는 현철씨에 대한 재소환조사가 끝난
시점에서야 일단락 될 것이라는 것이 법조주변의 관측이다.

< 이심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