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 부도로 어수선하던 지난달 27일.

부도 뒤처리로 저녁도 거른채 사무실에서 서류더미에 파묻혀있던 산업은행의
김시형 총재는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다.

"산업은행이 약속한 3천억원을 지원해주지 않아 부도가 났소.

그 돈만 있었으면 (공장이) 제대로 돌아갈수 있었단 말이야"

TV에 모습을 드러낸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은 흥분된 어조로 산업은행을
원망하고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올라 지난 1월4일 오후 4시께.

정태수 총회장이 산은 총재실에 들어섰다.

"총재님, 3천억원을 급히 좀 지원해 주셔야겠습니다"

정총회장의 말투는 절박했다.

평소 스타일과 달리 사정조였다.

"안되겠습니다.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으로 가서 상의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면담은 단 5분만에 끝났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김총재의 냉담한 인사말을 뒤로 두사람은 등을
돌렸다.

3년동안 "밀월"을 이어왔던 한보철강과 산업은행이 "파경"을 공식선언하는
순간이었다.

김총재는 당시 한보철강에 대한 추가자금 지원이 어렵다는 생각을 이미
굳히고 있었다.

실무선에서 올라온 "대출 불가" 보고서가 이미 첩첩히 쌓여있었다.

돌이켜보면 한보철강과 산업은행의 인연은 각별한 것이었다.

산업은행은 지난 92년말 상공부의 외화대출 적격업체 추천으로 1백67억원을
대출하면서 한보철강 제1단계 공사지원을 시작했다.

이후 93년 1천19억원, 94년 3천3백78억원, 95년 1천2백억원, 96년에 2천5백
64억원 등 모두 8천5백억원이 넘는 자금을 빌려줬다.

시중은행들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대출하는 것을 보면서 "안심"하고
뛰어들었다.

다른 은행이 볼때는 "한보 네트워크"의 중심에 산업은행이 있었던 셈이다.

어떻든 이 금액은 순수민간기업에 대한 대출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지난해 7월에는 8백억원의 시설자금분에 대해 제2금융권에 지급보증을 섰고
11월4일에는 긴급운영자금 5백억원을 지급보증했다.

파격이라면 파격적인 지원이었다.

그랬던 산업은행이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 때는 지난해 12월7일부터.

이날 한보철강은 불과 34억원의 외화대출이자를 결제하지 못해 산업은행이
대지급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다.

사실상 부도였다.

산업은행 부산지점이 김총재의 지시로 한보철강 자금사정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도 바로 이날 저녁.

물론 극비조사였다.

김총재는 조사가 마무리된 12월9일 임원진들과 회의를 갖고 "당진공장은
완공해야 한다.

그러나 더이상 한보철강에 대한 단독 지원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보철강에 대한 "은행관리" 구상이 드러난 시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을 뒤집어보면 그만큼 은행들이 한보자금에 대해 까맣게
몰랐었다는 얘기도 된다.

어느 귀신이 잡아가는줄도 모르고 수조원을 퍼내주고 있었던 것이다.

한심한 일이 아닐수 없다.

1월13일과 1월20일 한보철강 정보근 회장이 연거푸 찾아왔다.

김총재는 20일 면담에서 "이제는 자금지원이 문제가 아니다.

공장완공 때까지 은행들이 한보철강에 대한 자금관리에 들어갈 것"이라고
못박았다.

김총재는 정회장이 TV에 출현한지 10일만에 검찰로부터 소환장을 받았다.

설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6일 오전 9시였다.

예견했던 일이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검찰청사 포토라인에 들어섰던 두 시중은행장이 이미 구속된 뒤였다.

자신을 정면으로 겨냥한 정총회장의 말투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김총재는 무려 30시간의 조사를 받고 7일 오후 검찰청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정치인들의 잇단 소환을 지켜 보았다.

<조일훈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