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재배치가 조직 슬림화의 새로운 수단으로 부상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인력재배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이것이 간접적인 고용조정의 수단이라는
것.
즉 "법적으로 정리해고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관리직 "학살"의 방법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김영주 금융노련 부위원장)는 우려가 그것이다.
반면 기업측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조직의 군살은 빼야겠고 그렇다고 대량감원이나 명예퇴직을 실시하면
직원들의 동요가 일어날 것은 뻔한 일이다.
인력재배치는 감원 없는 경영합리화를 추진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김영기
LG그룹 인사팀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요는 인력재배치란 감원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최근 기업들의 움직임을 보면 인력재배치가 대세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느낌이다.
한달전만 해도 기업들은 고비용구조 타개의 최선책으로 명예퇴직을 우선
고려했다.
여기에는 선경인더스트리의 대대적인 명예퇴직 실시가 촉매제가 됐다.
이같은 분위기가 급선회한 계기는 "실업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부총리의
발언.
"무작정 사원들을 길거리로 내몰면 어떡하느냐"는 여론도 이에 가세했다.
기업 내부적으로도 사원들이 동요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LG그룹을
선두로 각 기업들이 잇따라 "감원없는" 경영합리화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결과적으로 명예퇴직 바람은 잠잠해진 반면 "인력재배치"는 전면으로
부상했다.
더구나 최근의 인력재배치는 특정사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실시되는게
아니라 그룹 차원의 리스트럭처링을 통해 전면적으로 시행된다는 점에서
종전과는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화그룹은 최근 생산지원과 인사 등 관리부문의 인력 1만여명을 절반으로
감축키로 하고 계열사별로 전면적인 부서체계 조정작업에 착수했다.
쌍용그룹도 업무과정 개선을 통해 관리.지원 부서인력을 대대적으로 줄여
나간다는 경쟁력 개선대책을 확정했다.
쌍용은 우선 1단계로 금융관련 계열사인 화재보험과 투자증권 본사직원
1천여명중 20%를 영업부와 일선점포에 재배치키로 했다.
코오롱그룹 역시 지난달 관리 영업부문 인력중 30%를 생산.영업현장에
재배치한다는 불황대책을 확정하고 계열사별로 구체적인 실행지침을 마련중
이다.
이에 앞서 삼성그룹도 전계열사별로 인력재배치를 통해 지원부서 인력을
영업부서로 전진배치하기로 했다.
이중 삼성물산은 이미 지원부서 인력 2백40명중 1백20명을 영업부서로
발령해 관리인력비중을 종전의 18%에서 9%로 슬림화했다.
물론 기업들은 인력재배치에 대한 나름의 보완책을 갖추고 있다.
이것이 간접적인 해고수단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원들에게 미리 교육기회를 주는 것이나 순환보직제를 통해 재배치 대상
인력을 대상으로 재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그러나 실제로 인력재배치 대상이 되는 사원들의 경우 받아들이는 입장이
다르다.
"경리부에서 돈만 만지던 사람에게 갑자기 거래처를 뚫으라고 하는 것은
나가달라는 의미와 다름이 없다"(이랜드 K과장)는 의구심이 우선 제기되고
있다.
인력재배치가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기업들의 경영을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업구조조정을 하다보면 해당 사업부의 직원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정부는 여기에 대해 아무런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S그룹 L부장)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경쟁력 강화" "감원 없는 경영합리화" "사업구조 조정"등
상호 상반된 가치관을 동시에 달성하기는 힘들다는게 기업들의 불만이다.
게다가 인위적인 고용조정 규제는 새로 노동시장에 편입되는 신규인력을
줄인다는 지적도 있다.
"기업들이 끌어안고 있는 절대인력을 줄일 수 없다면 2~3년 후엔 신규채용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다"(대우회장실 권오택 인사팀장)라는 주장이다.
인력재배치가 어떤식으로 마무리될지는 아무도 예측하기 힘들다.
살아남는 자도 있고 도태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기업은 기업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이의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