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입법예고한 "금융기관 합병 및 전환에 관한 법률" 개정안(금융산업
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이 난항을 겪고 있다.

은행등 금융기관 임직원들은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금융기관간 합병을
통한 대형화가 필수적이라는데 동의하면서도 획기적인 제도개편을 단기간에
강행하려는데 대해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금융계는 특히 정부가 책임경영체제확립방안에 이어 합전법개정안을 내놓는
등 각종 금융산업개편과 관련한 정책을 휘몰아치듯 쏟아져 발표하는데 대해
자칫 졸속으로 추진될 경우 또다른 부작용을 낳기 십상이라는 걱정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8일 제일은행 4층강당에서 금융연구원주최로 열린 "금융산업의 구조개선
방안" 공청회에서 금융노련등이 대거 참석, "시위"를 벌인 것도 합전법
개정안의 앞날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해주고 있다.

이날 공청회에서 가장 크게 격론을 벌인 것은 부실금융기관의 직원들을
임의로 해고할수 있도록 한 고용조정제도.

금융기관 직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금융노련측은 "평생직장으로 알고
들어온 은행원을 대상으로 정리해고제를 시행하는 것은 은행원들만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석홍 한일은행 노조위원장은 "정부가 정기국회통과를 목표로 내놓은 각종
은행대책이 강제인수 합볍을 목표로 추진되는 것 같다"며 "정부가 은행의
의견수렴절차를 소홀히 한채 자의적으로 성급하게 은행산업의 개편을 추진
하는데 반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원봉희 재정경제원 금융총괄심의관은 그러나 "금융기관이 파산할 경우
종업원 모두 직장을 잃게 되기 때문에 일부나마 직장을 계속 다닐수 있도록
한 고용조정제는 은행원들을 위한 것"이라며 "고용조정은 부실금융기관이
합병될 때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고용불안을 야기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강제적으로 부실기관의 합병을 권고할 수 있도록 하는등 정부의
인위적인 합병계획방침에도 금융권에서는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 "잘 나가는 은행"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세계 유수은행으로 발돋움
할수 있다는 생각에서 새로운 제도가 빨리 시행되야 한다는 입장이다.

외환은행의 이갑현이사는 "거대 자본력과 선진 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외국의
대형은행들과 경쟁하려면 자본금이 외국은행의 10분의 1에 불과한 국내
대형은행간에도 활발한 합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실은행뿐아니라 이른바 리딩뱅크(선발은행)간의 활발한 합병이
촉진되도록 유인책을 보다 과감하게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은행들은 새 제도가 충분한 논의없이 자칫 졸속으로
시행되면 오히려 은행의 자율적인 경쟁력강화를 가로막는 우를 범할수 있다
고 지적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번 "합전법"개정안에는 보완해야할 과제가 많은 것으로 지적
됐다.

우선 합병기관의 업무영역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금융연구원은 이를위해 은행의 업무영역허용을 자본금규모에 연계시키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됐다.

예컨대 일정 자본규모이상의 경우 증권관련업무를 해당은행에 조기허용하는
등 기존 업무영역밖의 새로운 업무허용을 검토하고 장기적으로 금융권간
업무영역확대정책의 검토시 이종금융기관 합볍을 통한 업무영역확대를 허용
하는 방안도 검토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합병금융기관의 기존업무 취급기간도 문제로 지적됐다.

합병전 개별은행의 업무를 합병후에도 수행할수 있도록 허용하도록 해
합병시 범위의 경제성을 극대화하고 합병유인을 제고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연구원은 그래서 금융채발행허용은행과 불허용은행간 합병시 합병후
금융채발행을 허용하는 쪽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은행과 한국신탁은행이 합병할때 신탁은행의 독점적 신탁업무를 계속
영위하도록 허락한 점은 참고할 만하다는 지적이다.

지방은행간 합병시 영업지역확대를 전국으로 허용하는 방안도 고려할수
있다.

결국 정부의 금융구조개편안에 대한 금융계의 반응은 대체로 금융개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그 도입속도가 너무 빨라 시행착오가 우려
된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새 제도도입으로 금융권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금융산업개편을 주도하는
정부와 금융계와 학계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는 작업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 박준동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