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사는 동종업계에서 모방의 천재로 악명이 높다.

이 회사는 좀처럼 남들보다 먼저 신제품을 개발하는 법이 없다.

경쟁사가 새로운 제품을 내놓고 성공하겠다는 조짐이 보이면 순식간에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낸다.

이름도 비슷하고 맛도 비슷하다.

이른바 "나도 제품"(me-too product)이다.

A사가 이처럼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막대한 자금력과 강한 유통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사가 앞서 달려나가더라도 화끈한 광고공세와 함께 그동안 닦아놓은
유통망을 활용하면 따라잡는 것은 순식간이다.

무차별적인 광고공세를 펼치면 소비자들은 선발제품보다 오히려 A사의
제품이 먼저 나온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괜찮은 신제품이 나오면 우후죽순처럼 비슷한 제품이 쏟아지는 이러한
"흉내내기 바람"은 식품이나 음료 제약업계 등에서 특히 심하게 일어난다.

지난 93년 "비락식혜"가 나오자 "맛그린식혜"(LG화학) "본가식혜"
(제일제당) "잔치집식혜"(롯데칠성음료) 등 무료 70여개사가 식혜시장에
참여, 난데없는 전통음료바람이 불었다.

제일제당의 "컨디션"이후 "아스파"(미원) "솔표비즈니스"(조선무약)
"알지오"(두산백화) 등이 뛰어든 숙취제거음료 싸움,"가을대추"(웅진)이후
불어닥친 "홍대추"(롯데칠성음료) "큰집대추"(해태음료) 등의 대추음료싸움
등도 전형적인 예다.

국내 제약업체들을 먹여살린다는 드링크류도 자세히 뜯어보면 비슷비슷한
제품들이 많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카스 원비디 활원 등 드링크제품들은 미국 등지로 수출될 때 "의약품"이
아닌 "식품"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들이 이처럼 너도나도 모방행위에 나서는 것은 우선 제품개발비나
광고선전비가 적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선발제품이 소비자의 반응을 검증해주었기 때문에 미지의 시장에
들어갈 때 부딪히는 위험도 줄어든다.

업계 일각에서는 "모방불가피론"이 나오기도 한다.

B사 관계자는 [획기적인 신제품이란게 한정돼 있을뿐더러 루트세일
(Route Sale)이 일반적인 국내 유통과정상 모방제품은 필요악이다]라고
말한다.

선진국처럼 소매상이 판매동향에 따라 도매상에 물품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체의 영업사원이 일일이 점포를 돌며 이제품
저제품을 한꺼번에 내려놓는 상황에서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모방제품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선발기업으로서는 원통하지만 모방제품을 막아낼 뾰족한 대책이
없는게 보통이다.

제품명처럼 "특허권"에 의한 것이 아니면 현실적으로 방어전략을
세우기가 힘들다.

따라서 국내 기업의 마케팅전략은 "신제품개발"보다는 누가 필요한
원료를 얼마나 확보했느냐라는 "원료확보경쟁"에 맞춰지기도 한다.

국내 식음료업체들이 농산물 수매량을 최상급 비밀로 분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모방행위는 나쁜 것으로 인식돼 왔다.

모방은 곧 남의 것을 훔치는 행위란 죄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케터들사이에선 모방행위를 정당한 기업전략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모방 자체가 단순한 "복제"가 아닌 "창조적으로 개량한 경우"에
한해서이다.

연구개발(R&D) 못지않게 연구개작(R&C, Research & Copy 의 효용성에도
주목하자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기업들의 모방행위가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의 이익이나
경제적인 효율성을 더 높인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선발기업보다는 오히려 모방을 잘하는 후발기업이 시장에서 더 잘
살아남는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C사의 마케팅담당 L이사는 [경쟁사의 전략을 따라갈 것이냐 아니냐는
기본적으로 기업들이 처한 시장상황에 따라 판단할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추음료시장에서 모방행위를 통해 선발기업(웅진)을 따라잡은
H사와 최근 소주시장에서 일어난 벌꿀소주붐을 외면하고 독자적인
시장개척에 나서 성공한 J사중 누가 더 소비자에게 이익을 주었는가는
판가름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 이영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