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최고경영자를 파견하는 친정경영 체제와 현지인에게 경영의
전권을 주는 완전 현지경영, 그리고 둘을 합친 복합형 경영중 어느쪽이
해외현지기업을 경영하는데 효율적일까"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전자 등 라이벌 전자업체들이 해외 인수기업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경영해 관심을 끌고 있다.

삼성이 "친정경영체제"로 바꾼데 비해 현대는 반대로 "완전 현지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LG는 양측의 힘을 합하는 "2인3각 경영" 전략을 펴고있는
것.

삼성이 인수한 AST나 현대의 맥스터, LG의 제니스 모두 덩치는 크나
경영상태가 좋지않은 업체다.

재계는 친정경영 완전현지경영 복합경영중 어떤 방식을 적용한 업체가
먼저 정상화되느냐에 따라 국내기업들의 해외현지경영 방식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이들 3사를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8일 미AST사의 최고 책임자 자리를 현지인에서
"삼성맨"으로 교체했다.

김광호부회장이 지난 6월 이사회 의장으로 취임한데 이어 김영수
경영고문이 대표이사 자리에 앉힌 것.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자리와 이를 감독하는 자리의 책임자로
삼성맨을 앉힘으로써 친정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삼성이 구축한 "투 톱시스템"은 앞으로 AST를 삼성에서 책임질뿐
아니라 경영방식 자체를 삼성식으로 전환할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김부회장이나 김고문이 모두 삼성에서 잔뼈가 굵은 대표적
전문경영인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그동안 현지인 사장을 중심으로 줄기차게 시도해온 경영정상화의
노력이 전혀 성과를 거두고 못했다는 점에서 경영방식의 획기적 변화가
점쳐지기도 한다.

김고문은 대표이사로 선임된 후 현지언론과의 인터뷰에서 "AST는
삼성으로 부터 자금뿐아니라 경영혁신등 다양한 분야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비록 미국기업이지만 필요할 경우 한국식으로 경영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대는 삼성과 정반대로 친정체제에서 현지인 경영체제로 바꾸었다.

현대는 지난 6월 미맥스터사의 최고 책임자로 현지인을 임명했다.

그동안 맥스터를 이끌어오던 박종섭사장은 전략기획만을 맡고 현지인
사장이 회사 경영을 전담토록 했다.

"회사경영엔 역시 사람을 다루는 게 가장 중요한데 미국사람은 미국인이
관리하는게 효율적"(정몽헌 현대전자 회장)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조치다.

단지 사장만을 교체한 게 아니다.

사장이 누구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 줬다.

맥스터의 지분을 1백% 인수한 뒤 상장을 폐지해 버린 것.

미국은 한국과 달리 주주들의 입김이 세다.

소액주주라도 회사경영에 일일이 간섭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경영자가 주주의 간섭없이 소신을 가지고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상장을 폐지해 버렸다"(김주용 현대전자 사장)는 설명이다.

LG는 삼성과 현대의 중간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제니스와 LG전자가 합의체 형식으로 "2인3각"의 경영전략을 펼치고
있는데서 엿볼 수 있다.

"제니스의 경영상태를 정상화 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엔 LG와 제니스에서
같은 숫자의 인원이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조기송 LG전자상무).

이 원칙은 이사회 멤버 구성에도 적용되고 있다.

지분의 50%를 넘게 갖고 있는 만큼 의장은 LG측(이헌조회장)이 맡았다.

하지만 이사회엔 4명만을 참여시켜 5명이 멤버인 제니스측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다.

한마디로 "경영권을 갖고 있지만 제니스 사람들에게 점령군이라는
인상을 주지않겠다"(이회장)는 것.

균형과 견제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하자는 전략이다.

인수기업의 재무상태와 사업내용에 차이가 있어 이들 3사의 차별화된
경영방식중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중요한 것은 친정경영이든 완전현지경영이든 복합형 경영이든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간 인식이 통일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인적 물적자원을 한군데로 집중시킬 수있다"(전자산업진흥회
이상원 부회장) 이부회장은 그런 점에서 미국 영화사 MCA사를 샀다가
실패한 일본 마쓰시타사의 사례를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쓰시타는 최고경영자의 단안으로 의사를 신속히 결정하는 미국적
풍토와 여러단계를 거쳐 신중히 결정하는 일본의 기업문화, 그리고
내부유보를 중시하는 일본의 기업경영방식과 이익이 나면 주주에게
배당하거나 신규사업을 벌이는 미국식 경영방식의 차이를 극복하지못해
MCA를 매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주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