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은 국교수립(92년8월24일) 4년동안 경제교류확대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으나 정치-군사분야 등에선 답보상태를 면치못하고 있다는게
대체적인 평가이다.

우선 경제분야에서 한국은 올 상반기에 중국의 4대 교역국으로 부상했다.

그동안 한국은 일본 홍콩 미국 대만 독일에 이어 6대교역국 수준에
머물렀으나 95년 10월이후 독일과 대만을 앞질렀다.

홍콩을 제외할 경우 미국 일본에 이은 중국의 3대 교역국가인 셈이다.

양국의 경제교류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분쟁이나 마찰이 없다는 점이다.

중국과 미국,중국과 일본간 경제분야 "갈등관계"에 비춰볼 때 이상하리만치
순조로운 경제교류이다.

주중한국대사관 정원익참사관은 "오랜 경제협력의 단절과 이에따른 공백을
메우고 경쟁국을 따라잡기 위해 양국정부가 앞장서 관계개선에 노력한
때문에 갈등이 덜 했던 것 같다"고 분석한다.

산업분야의 협력도 대체로 순조롭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국은 94년6월 한중산업협력위원회 설치합의에 따라 중형항공기 및 고화질
(HD)TV 자동차 전전자교환기(TDX)등 4개분야의 구체적인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중 1백인승 중형항공기의 합작생산은 무산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3개분야의 협력은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는게 한국기업들의
전망이다.

양국의 경제협력은 금융분야에서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다.

양국경제의 "핏줄"역할을 할 금융분야의 상호교류는 현재보다 미래의 교역
규모가 더 커질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외환은행은 천진과 대련 북경에, 상업은행과 산업은행은 상해에,
조흥은행은 천진에 지점을 두고 있다.

또 삼성생명과 LG화재는 북경에 사무소를 설치했고 대우증권과 부국증권
LG증권 동서증권 대신증권 동양증권등도 장래에 중국내 영업을 시작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현지 연락사무소를 마련한 상태이다.

중국계 은행의 한국진출 또한 만만치 않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중국은행은 이미 한국내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중국
공상은행과 건설은행도 서울에 사무소를 열었다.

"중국전체가 현장같다"는 건설분야도 우리 건설업체들의 공격 목표이다.

아직 이익을 보았다는 건설업체는 많지 않으나 대부분 거대한 중국건설시장
을 넘볼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국교수립 이후 4년간 우리 건설업체(30개사)가 중국에서 수주한 물량은
18억5천1백만달러.

그동안 북경과 상해에서 아파트와 빌라 복합빌딩건설 등에 치중했으나 올
상반기 이후에는 연길과 남경 산동 심양등으로 지역을 확대하고 공단조성과
공장건설등 대규모 사업으로 참여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밖에 기존 서울.부산~북경 상해 심양 등의 항공노선이 제주~북경, 부산.
제주~상해, 서울~해남도등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이다.

양국간 해안에 여객선과 화물선을 취항한 해운사는 위동해운 연대중한
(중국) 진천항운 대인훼리(한국)등 4개사나 되며 내년 상반기까지 기존
항로외에 부산~상해 목포~연운항 인천~단동항로가 개설될 것으로 보인다.

국교수립 4년간의 성과치고는 "상당한 수준"이다.

경제분야로만 놓고 볼때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정치분야로 눈을 돌리면 한중간 관계의 평가는 인색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한국과의 경제분야협력을 추진하면서도 북한을 의식, 정치분야에선
앞으로 나가는데 주저하고 있다.

물론 중국으로선 그럴만한 사정이 없는게 아니다.

중국은 중국공산당이 창건(49년10월1일)된지 엿새뒤 북한과 "혈맹"의
관계를 맺었다.

우리의 수교 시점보다 44년10개월전의 일이다.

실제로 중국이 정치 외교분야에서 우리보다 북한을 가깝게 대하는 것은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우리 공관관계자들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교가 수립된 이상 주권국가에 대한 중국의 자세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예로 최근 기아자동차 연길훈련원장 박명환씨가 연길 현지에서 사망했을
때 중국측이 취한 자세라든지, 소설가 김영씨가 입북한 이후의 양국간
대화채널은 미수교국가 수준이었다고 혹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국 경제적 실리를 찾고 정치적으론 기존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중국의
대한정책이 바뀌지 않는한 현재 가파르게 증가하는 한국기업의 대중투자도
조만간 한계를 드러낼 것(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김홍지북경무역관장)으로
보인다.

이를 극복해야 초기의 "순조로운 한중관계"가 착근할수 있다는 얘기다.

< 북경=김영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