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산업 성장을 이끌었던 소형승용차가 일대 위기를 맞고 있다.

내수판매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데다 포드 벤츠 BMW 등 선진메이커들이
소형승용차(배기량 1천2백~1천5백cc급)시장으로 되돌아오고 있어 수출여건
마저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승용차 생산능력은 7월말현재 연간 2백30만대.

이중 70%가 소형승용차다.

4분의 3에 가까운 부분에 문제가 생긴다면 업계가 목표로 하고 있는
"2000년 세계4위 생산국 진입"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자동차 산업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자동차업계에 "소형차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소형차 위기론은 우선 내수판매의 감소세를 근거로 한다.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소형승용차 내수판매는 지난 94년의 64만5천대를
고비로 줄기 시작, 작년엔 56만5천대에 그쳤다.

올들어서도 상반기 판매량이 25만대에 불과해 연간 50만대 안팎에 머물
전망이다.

전체 승용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1년 62.4%에서 지난해에는 49.9%로
낮아졌다.

"올해엔 40% 밑으로 떨어질 것"(기아자동차 마케팅담당 박정림이사)이란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은 편은 아니다.

소형차에서 중.대형차로 넘어가는 대체수요가 신규수요를 앞지르고
있는데다 국내 소비자들이 유난히 큰 차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업계는 물론 2000년대에 접어 들면 소형차 시장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1가구 2차량 시대가 도래하면서 소형차 수요가 회복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1가구 2차량에 대한 중과세 도로여건 소득증가속도 등으로 볼때
1가구 2차량 시대가 업계의 기대처럼 빨리 다가올지는 미지수다.

상황은 수출시장도 마찬가지다.

수출시장에는 선진메이커들의 소형차 시장 복귀라는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선진메이커들이 소형차 시장에 되돌아온다고 해도 가격면에서 당장 경쟁력
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선진메이커들의 "소형차시장 복귀작전"은 그렇게 간단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포드 벤츠 혼다 등은 "고급소형차"라는 새로운 세그먼트를 만드는가 하면
모터라이제이션 시대를 맞고 있는 개도국만을 대상으로 한 "저가형 소형
승용차"를 개발하고 있다.

이 두가지 공략법으로 소형차시장을 아예 저인망으로 훑어가겠다는 전략
이다.

"샌드위치식 공략법"으로 볼 수도 있다.

국내업체들도 더 이상 가격경쟁력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국내자동차업계의 평균임금이 이미 선진업체수준에까지 육박했기 때문이다.

"국내업체들도 이제는 고급화와 저가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함께 잡는다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현대자동차 수출계획실 이형근이사).

방법은 연구개발 밖에 없다.

수출시장별 특성에 맞는 소형차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

현대가 과거 포니나 엑셀에 적용했던 "월드카" 개념을 버리고 "로컬카"
개념을 도입키로 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기술개발을 통한 품질향상과 함께 원가절감으로 한국차의 최대무기인
가격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소형차가 살아야 중형차 대형차가 해외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소형차를 살리기 위한 업계의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 김정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