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절망" 또는
"우울증"을 표현한 말이다.

한국인의 우울증은 발생양태가 독특하고 대표적 증상인 화병을 수반하기
때문에 이를 올바로 인식, 건강한 삶을 누리는데 참고해야 하겠다.

"정신적 감기"라는 우울증은 대부분 무난히 치유되지만 극단적 우울증은
자살에 이르게할수도 있으며 사회생산성을 떨어뜨리게 된다.

국내 화병의 발병률은 중증 우울증인 주요우울장애와 비슷한 4%내외.

경희대 송지영교수(정신과)는 "부당하고 불합리하며 예측이 불가능한
한국사회의 특수성 때문에 화병이 많이 생기는 것으로 생각된다"며
"나만 억울한 일을 당하고 항상 실패한다는 생각이 머리끝으로 솟구치면
자율신경실조를 일으켜 화병증세가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화병은 아직 우리나라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이 스트레스에 민감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하는 학자가 많다.

사회가 정의롭고 명쾌해질때 화병이 줄어들 것이라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이민수교수(정신과)는 "한국인의 우울증은 외국에 비해
고부간 부부간 부모자식간등 가족갈등이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으며 정상인과 환자와의 진단이 모호한 점이 많은 것이 특색"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문화적 가족적 풍토가 반영된 한국형 우울증의
진단척도가 마련돼야 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외국 정신의학자들이 만든 우울증 척도를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 실정에 맞는 진단문항이 마련되면 진단이 정확해지고 우울증
유발유전자를 규명해낼수 있어 치료에 도움이 될수 있다는 것.

한국형우울증 척도개발을 위해 기초연구를 진행중인 이교수는 내원환자
302명을 대상으로 우울증을 일으킨 생활사건을 조사한 결과 고부갈등이
9.8%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부부싸움.불화(9.2%) 질병.건강악화(8.4%) 남편의 외도(6.3%)
남편의 사망(5.0%) 순으로 밝혀졌다는 것.

경희대 송교수는 "일중독증에 빠진 사람은 강박관념이 강하고 의존적인
사람이 많다"며 "일중독증으로 인한 우울증환자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또 "일중독증을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측면이 있으나 일중독증
환자는 일상생활의 사소한 좌절과 불만족으로 만성적인 우울증에 쉽게
휩싸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자신이나 조직을 위해 바람직할게 없다"고
강조한다.

연세대 민성길교수(정신과)는 "수많은 우울증환자가 다른병으로 잘못
진단되고 있다"며 "아마도 내과에서 "신경성"이라는 접두사로 명명되는
대부분의 질병이 우울증일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환자가 이병원 저병원 다니며 정확한 진단을 얻어내기 위해 시간과
돈을 낭비하기 전에 의사는 특히 가정의와 내과의는 우울증을 구별해 내는
섬세한 안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울증 화병등의 증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믿음가는 대화상대를 택해
화난 이유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유를 알았다면 반쯤 치료된 것이기 때문.

또한 운동 레저 음악을 비롯한 예술작품감상 등으로 울화와 분노를
효과적으로 발산시켜야 한다.

일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생활자세도 바람직하다.

이와 함께 일의 결과가 좋으면 평소 사고 싶어하던 물건을 산다든가,
가족이나 동료에게 식사를 대접한다든가 하는 자기자신에 대한 북돋움이
요구된다.

<정종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