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곡물가공업체들의 속앓이가 심화되고 있다.

국제곡물시장에서 밀 대두 옥수수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있으나
밀가루 식용유가격을 추가로 올릴 수 없는 형편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달러가치도 강세행진을 지속하고있어 국내
곡물가공업체들은 2중3중고에 시달리고있다.

이에 따라 대한제분 신동방 제일제당등 국물가공업체들은 공장가동률을
70%선으로 낮추고있으며 앞으로 더 낮출 계획도 검토하고있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품을 만드느니 차라리 생산을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사정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있는 것은 국제시장에서의 곡물가격과
달러가치강세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않고 장기간 지속될 전망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업계관계자들은 악조건을 견딜 수없는 일부 영세업체들이 결국 도산할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대한제분의 김영삼이사는 "가격은 고사하고 물량확보가 어렵다.

미국정부가 밀수출을 금지할 것이라는 소식마저 들리고있다"고 말해
최근 제분업계가 처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있다.

김이사는 "국제시장에서 구매하는 가격과 밀가수사용업체들에 판매하는
가격이 워낙 차이가 나지만 지금으로서는 뽀족한 방안이 없다"며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견디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점칠수없다"고 말했다.

국제시장에서의 밀가격은 지난 3월말에 t당 2백25달러하던 것이 이달
말에는 2백80달러로 한달사이에 무려 24%나 올랐다.

반면 국내 밀가루가격은 지난해 11월에 11% 오른 이후 움직이고있지
않고있다.

제분사업은 해외에서 사온 밀을 빻아 파는 사업으로 국제밀가격시세의
부담을 그대로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제시장의 밀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마음대로 가격을 올릴수도
없는 형편이다.

정부눈치도 봐야하고 업계간 경쟁도 만만치않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도 지난 연말 또는 연초의 가격인상이 이뤄진자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추가인상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눈치다.

재정경제원의 장병완 생활물가과장은 "업계가 어려운 줄은 충분히
알고있다.

그러나 현재 밀가루가격은 3월까지의 인상요인을 이미 반영하고있다.

최근 급등하고있는 국제밀가격이 국내 밀가루가격에 영향을 미치는데는
시차가 있다.

당분간은 제분업체들이 현재가격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본다"고 말했다.

장과장은 "밀가루가격인상보다 이를 빌미로 원가에 별로 부담도
받지않는 라면.제과업체, 짜장면 등 음식점들이 가격을 덩달아 올릴까
더 걱정이 돼 함부로 밀가격을 조정하기도 어렵다"며 밀가루가격조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두를 수입해 식용유를 가공.판매하는 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신동방 제일제당 삼양유지등 대두3사는 국제시장에서 대두가격이
올라도 섣불리 식용유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형편이다.

물가당국의 눈치도 봐야하지만 해외에서 직접 식용유를 사다가 판매하는
경쟁업체들의 시장잠식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대두가격은 4월말 현재 t당 3백50달러로 지난해 4월보다 35%나 뛰었다.

반면 식용유가격은 지난 2월 6% 오른데 그치고있다.

식용유수입에 따른 산업피해구제신청을 내놓고있지만 결과는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형국이다.

옥수수도 다를게 없다.

심지어는 옥수수가격이 뛰면서 국내 사료업체들이 원료구매를 일시중단,
축산농가에 대한 배합사료공급이 위협받고있는 실정이다.

옥수수가격은 지난해 평균 1백57달러에서 이달들어 2백달러를 돌파,
2백34달러에 달하고있다.

제일제당의 손영록 곡물팀장은 "엊그제 미국 중서부에 비가내려 곡물수확
과 가격안정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손팀장은 "이번 미국 중서부 강우로 미국의 작황이 약간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중국 등 아시아지역의 수요증가가 워낙 크기 때문에 곡물가격 강세
흐름을 꺾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와 업계 모두가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국제곡물가격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느 모습이다.

<김광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