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산업의 대내외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선진국의 설비합리화와 개도국의 설비확장으로 철강산업의
중심축이 동아시아로 이동중이고 국내도 설비신증설 경쟁에 휩싸여 있다.

박슬라브공법과 용융환원제철법의 상용화로 기술변화도 빨라지는 추세이며
다른 한편에서 환경문제가 철강산업의 발목을 잡는 커다란 걸림돌로
떠올랐다.

한국 철강산업의 현주소와 발전방향을 짚어본다.

< 이희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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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철강산업은 양적으로는 이미 "대국"의 반열에 들어섰다.

지난 73년 일관제철에 의한 철강생산을 개시한 이래 4반세기라는 짧은
기간동안 한국은 세계6위의 철강생산국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조강생산은 모두 3,370만t으로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독일에 이어
세계6위다.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등이 모두 한국의 뒤에
있다.

게다가 지금도 설비확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은 오는 2000년에는 4,630만t으로 생산이 증가해 독일을
제치고 5위에 올라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국내경제에서도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GDP에서 차지하는 철강의 비중은 지난 94년 기준으로 2.0%.

정보통신 자동차 서비스산업등의 빠른 성장으로 90년대들어 다소 줄기는
했으나 여전히 국가기간산업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제조업 총생산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7.6%와 5.8%에 달하고
있다.

또하나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자동차 전자 기계 조선등 철강수요산업에
고품질의 철강재를 저가에 공급하고 있다는 점.

국내 업체들이 포철의 핫코일이나 냉연코일을 확보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는
사실이 입증하듯 철강산업은 다른 수요산업의 가격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꼽을 수있는게 양적성장이나 가격경쟁력의 우위확보에도 불구하고
기술에서는 아직도 "톱"의 자리에 올라서지 못한 부문이 많다는 점이다.

현재의 기술도 일천한 철강역사를 감안하면 물론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핵심기술과 앞으로의 기술수준을 좌우하는 기술개발력에선 여전히
일본등 선진국에 뒤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기영 포철기술팀장은 "포스리산업"에 기고한 철강기술의 발전동향과
전망에서 보통강의 생산기술은 선진국과 동등한 수준에 올라 있으나 특수강
은 선진국에 비해 열세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특수강생산비중이 지난 93년 17.6%를 기록한데 비해 한국의 특수강
비중은 17.6%로 그 절반에 불과했다.

고부가가치화를 나타내는 냉연비도 24.0%로 일본의 29.3%에 뒤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술잠재력 지표도 마찬가지다.

우선 매출액대비 연구개발비의 비중이 크게 낮다.

지난 93년 국내 철강업체들의 매출액대비 연구개발투자는 일본의 절반수준
인 1.1%선에 그쳤다.

연구원 1인당 연구비도 2억2,000만원으로 일본의 53%에 불과했으며 종업원
1만명당 연구원수 역시 일본의 절반수준인 106명에 머물렀다.

세계적 철강업체라고 자랑하는 포철의 경우도 매출액대비 연구개발비(1.4%)
와 종업원 1만명당 연구원수에서 일본의 70%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개발투자가 미흡한 결과이긴하나 엔지니어링 능력이 취약하고 설비
제작 기술이 낮아 설비의 수입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문제다.

철강업체 자체의 기술개발과 공작기계업체들의 기술개발로 설비의 수입
의존도가 낮아지는 추세이긴 하나 핵심설비는 여전히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는 형편.

포철이 광양제철소에 건설중인 미니밀용 전기로를 신일철에서 들여오기로
한 것이나 한보철강 아산만공장의 대부분 설비가 일본이나 독일에서 들여온
것이라는 점에서도 이는 잘 입증된다.

기술적 측면외에 원자재의 해외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국내 철강업체들이
풀어야할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지적된다.

고로의 주원료인 철광석과 유연탄은 거의 100%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전기로 원료인 고철의 자급도도 70%선에 그치고 있다.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다보니 수요급증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경우 구조적으로 가격탄력성을 잃을 수밖에 없게 돼있다.

올해초 세계적인 철강경기회복과 미국의 미니밀 증가로 고철 수입가격이
t당 185달러까지 올라가 국내 전기로업체들의 채산성을 크게 압박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철강업체들이 해외광산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고철을 대체할 수있는
직접환원철 공장을 건설하거나 국내 리사이클링 체제의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하나 손꼽을 수있는 문제점은 인건비 상승과 물류비부담의 증가.

철강산업은 물류산업이라고 부를 정도로 제품이 중량물이거나 대형물이다.

따라서 물류비가 가격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나 국내
철강업체들의 물류비부담은 최근 5년간 25%나 늘어 매출액 대비 물류비부담
은 11%에 육박하고 있다.

인건비 상승은 그 이상이다.

물류비증가와 인건비상승이 가격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지는 것은 필지의
사실.

물론 선진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가격경쟁력에서 우위에 있다.

그러나 워낙 빠른 속도로 그 격차가 좁혀지고 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언제
역전될지 알 수없다.

세계적 철강전문연구기관인 미국의 WSD분석에 따르면 지난 87년 한국의
냉연강판 제조원가는 t당 360달러로 미국 일본등 선진국에 비해 19~24%정도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엔 375달러로 6년간 4.2%나 높아졌다.

선진국 철강업체들이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원가를 낮추어온 것과는 대조적
이다.

영국의 경우엔 t당 394달러로 한국의 105%수준으로 격차를 좁혔다.

따라서 한국 철강이 양과 질에서 세계최고의 수준을 확보키 위해서는 무엇
보다도 먼저 기술개발에 역점을 두고 동시에 원자재의 자급제고, 인건비
절감과 물류비 축소등을 통한 원가경쟁력의 유지가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4일자).